아무도 나를 몰랐으면 좋겠다.
같은 팀 후배 냥냥씨가 좋은 성과를 냈다.
나만이 그 사실을 아는 상황.
당연히 주간 업무에 성과를 알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간업무에 관련 내용이 없었다.
나: 냥냥씨, 이번주 한 일 중에 왜 그거 안 적었어요? 잘한 일인데 널리 알려야죠~ 혹시 깜빡한 거면 제가 지금 적고 있는데 같이 적어둘까요?
냥냥: 아뇨. 그거… 음…
대답을 망설이는 냥냥씨.
우물쭈물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간다.
냥냥: 주간 업무 회의 때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아서요…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냥 안 적을게요…
주간 업무 회의가 꽤나 부담이 되는 모양이었다.
잘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공유하기를 꺼려하는 것.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그저 무탈하게 한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란다는 냥냥씨의 이야기에 나는 더 이상 주간업무 수정을 권할 수 없었다.
잘한 일조차 드러내지 않는 이 조직에서,
잘 못한 일은 어떻게 될까 우려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온화한 하루가 더 소중한 사람도 있는 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물론 냥냥씨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주간 업무 시간은 내가 느끼기에도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이름은 호명되고 왠지 죄인이라도 된 듯 해명이 이루어지고 그 뒤에 질타가 따르곤 했다.
주간 업무라는 이름의 취조 시간 내지는 형벌의 시간은 숨이 먹힐 법도 했다.
나는 아직까지는 주간 업무 시간에 지적을 받아도 ‘그러라고 있는 시간이니까.’ 하고 버티고 있지만,
스스로도 점점 말수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공유하는 문화에서,
보고하는 문화로 바뀐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주간 업무는 리더의 시간이므로,
리더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맞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은, 아쉽지만 없는 듯했다.
우리의 조직은 엄격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맞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이에 맞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다.
주간 업무 시간은 팀원들이 시간이 아니라,
리더의 시간임을 인정해야 했다.
조언과 지적을 함으로써 리더의 권위가 올라가는 시간이라면 그것에 맞는 마음을 단단히 (혹은 유연하게) 준비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