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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Jul 17. 2023

일상이 이벤트

서프라이즈

이직한 이후로 친구 주주랑 종종 점심을 함께 한다.


이번 점심에는 주주가 미리 가봤다던 분위기 좋은 돈까스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돈까스 하면 질색 팔색을 하는 주주였지만 웬일인지 이 식당은 마음에 든다는 그녀.

식당은 일본풍 돈까스를 파는 곳으로 매장 분위기나 식기들이 아기자기하니 귀여웠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눈에 띈 하얀 봉투.

"뭘 이렇게 챙겨 왔어?" 하고 내가 묻자,

"아니, 그냥 뭐 좀 챙겼지." 하고 머쓱해하는 주주.

"이따 보여줄게." 하고 식사를 이어나간다.

'얘기해줄 만한 일이면 얘기를 해주겠지.' 하고 그녀가 대답을 회피하는 듯해서 나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그런 신뢰가 있었다.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먹으러 들린 빙수 가게에서 주주는 나에게 흰 봉투를 내밀더니 "아니, 그냥. 너 전에 회사였으면은 이런 거 챙겨줬을 것 같은데, 지금 회사는 그런 거 없을 것 같아가지구." 하며 다소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근데 편지는 이따 혼자 보고. 그거 선물만 풀어봐. 별거는 아닌데." 하고 말을 덧붙이는 그녀.


도대체 뭐지 하며 풀어본 선물은....

메달이었다.

현 직장에서 1년을 버텼다는 얘기를 언뜻 지나가면서 했는데 그걸 기억하곤 1주년 기념 메달을 제작해 준 것이었다. 세심하게 회사 로고까지 박아서 정말 그럴듯한 메달이었다.

회사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챙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기념일을 챙겨준 주주.


부끄러우니 편지는 혼자 있을 때 읽어보라며 메달은 별거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주주.

편지지는 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느낌이 드는 봉투와 실링왁스로 밀봉을 해둔 것이라 주주가 얼마나 섬세하게 준비했는지 읽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회사 사무실로 돌아와 열어본 편지를 읽곤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회사라서 울 수는 없었지만, 집이었다면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1년을 버틴 것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앞으로의 길에도 축복을 걸어주는 내용의 편지였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의 1주년을 챙겨준 것은 주주뿐이었다.

밋밋했던, 그저 다른 날과 똑같은 평범한 하루였던 날이 특별한 날로 바뀌는 순간을 선사하는 주주.


주주가 나를 생각해 준 그 시간들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할까, 이걸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까 기대하며 골랐을 선물과 편지였다.


주주는 항상 나한테 받아 간다고 하는데, 사실 항상 받는 쪽은 나다.

그 애는 나를 사랑한다고, 멋지다고, 응원하고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애였다. 그 말들이 나게에 어떤 힘을 주는지, 그 마법 같은 순간을 그 애는 잘 모를 거다.


수직적인 조직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고민을 들어주며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던 그녀. 가끔 있는 그녀와의 식사와 만남이 나에는 얼마나 큰 응원이 되던지. 그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1년이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한 10주년은 된 것 같지만 1주년이 맞다. 10년 같은 1년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틈틈이 밥 한술, 술 한잔 기울이는 인연이 계속되면 좋겠다.

묵묵히 일상을 지내다가도 이렇게 가끔 만나서 서로의 작고 큰 일들을 함께 위로하고 축하하며 이벤트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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