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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인정받으려고 하면 벌어지는 일

서브스턴스 후기

by 피넛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조금 포함되어 있습니다.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2025년 목표 중 하나인 ‘평소에 하지 않는 일 해보기’를 실행하는 날이었다.


뭘 볼까 하다가 소지섭 배우가 수입 및 배급에 참여한 (다른 투자사와 함께 투자하고 수입에 참여한걸 ’ 공동 제공‘이라고 하나보다. 소지섭 배우는 국내에 상영되기 힘든 독립 영화들을 수입하고 지원하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한다) ’ 서브스턴스‘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고, 골든글로브에서는 데미무어가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고 해서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영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서브스턴스’ 내용은 이러하다.

나이 들고 외모에 자신감을 잃은 스타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을 수 있는 약물(서브스턴스)을 통해 젊고 완벽한 ‘수’를 만들어낸다. 엘리자베스와 수는 각자 7일간 번갈아가면서 생활할 수 있다. 규칙을 어기면 패널티가 부여된다. 이 과정에서 점점 통제를 잃어가며 무너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외모지상주의와 젊음에 대한 욕망,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시각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였다.


나는 영화가 아주 명확하게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이가 없던 것은 나 스스로도 엘리자베스와 수의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역시 수가 어리고 예쁘고 탄탄해 보이네.’ 하고 평가를 하고 있었던 것.

엘리자베스의 고통에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모순에 빠져있는 내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여성들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보기 좋은 모습을 요구받는다. 나에게도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내면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그 기준에 영향을 받고, 나를 평가하고, 타인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더 이상 젊고 아름답지 않음에, 사회가 사랑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에 절망한다.

우연히 만난 동창생 (그녀를 찬양해 주는 인물)을 통해 자존감을 채우려 해 보지만, 꾸밀수록 젊은 자신과 비교하게 되면서 결국 약속 장소에 나가지 못하는 장면이 나왔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 안돼! 그래도 그냥 나가! 제발..!!‘ 하고 응원하게 되기도 했다.

물론 그 문턱을 넘지 못할 만큼 사회적 시선과 평가가 두렵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은 거야!’, ‘사회가 널 평가하게 두지 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너지는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그녀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가 떠올랐다.

에이미 슈머 주연의 ‘아이 필 프리티’.


영화 ‘아이 필 프리티’ 포스터


‘아이 필 프리티’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주인공 ‘르네‘가 사고로 인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고 믿게 되면서 자신감으로 인해 삶이 변화하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다.


외적으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삶이 바뀌게 된다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여성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형상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사회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조금 더 쉬운 쪽인 내가 바뀌는 쪽부터 생각해 보면,

사회적 인정과 평가보다 내가 인정하는 나의 모습, 외적인 부분 외에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면의 가치를 찾아주는 것부터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엘리자베스에게 나를 투영한다.

나는 뚱보 출신이라… (…) 어렸을 때부터 외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았고 부정적인 평가도 많이 받아봤다. 그래서 열등감도 많이 느끼고 자존감도 낮은 편이다. 그런데 외모를 빼놓고도 나에게는 멋진 점들이 있다. 나에게는 꾸준히 하는 힘이 있고, 경제적으로 자립했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어제보다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 물론 자신감 있을 때보다는 없을 때가 아직도 더 많지만, 계속해서 나의 좋은 점들을 찾으려고 한다.


어떤 때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다가도,

타인의 말 한마디에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고,

흔들리고, 깨지고 다시 작아진다.

그런데 또 자신감 차는 날이 온다.

계속 번갈아가면서 두 시기가 온다.


타인의 평가에 무게를 두면 무너지기 쉽다.

외부의 시선과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게 된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면 언제나 나는 부족한 사람이 된다. 끊임없이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를 채우는 삶을 살게 된다.


밖에서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자.

중심을 나에게 두자.

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힘은 오직 나에게 있다.



ps. 엘리자베스 님, ‘아이 필 프리티’ 꼭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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