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알아
취업한 이후 독립해 따로 살고 있지만,
종종 본가에 가서 엄마 아빠 옆에 붙어서 빈둥빈둥 놀다 올 때가 있다.
여유로운 본가에 있으니 심심해서 그런가.
엄마 아빠를 향해 잔소리가 절로 나온다.
엄마, 아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눈 깜빡하면 사기당하고, 피싱에, 스미싱에, 링크 하나 잘못 누르면 핸드폰 감염돼서 통장 다 털리는 거야.
아빠, 또 농가 살리기만 보고 이상한 거 샀지? 그거 진짜 농가 살리는지 누가 알아? 아무거나 막 사고 그러면 안돼.
나는 온갖 똑똑한 척 다 하면서 요즘 세상의 사기에 대해 일장연설을 펼친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아이쿠 무서운 세상, 하고 같이 놀라기도 하고,
조심할게~ 하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나를 향해 차 조심, 사람 조심 하면서 잔소리 스테디셀러를 날린다.
이렇게 잔소리 배틀을 하다 보니 세상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더러운 술수로 순진한 사람들을 벗겨먹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
조금만 방심하면 당할 것 같은 각박한 세상에 말하면서도 지치는 기분이 들지만,
사기 방법은 날로 진화하고,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 같아 얘기를 멈출 수가 없다.
그 와중에 고지서 정리를 하면서 엄마가 핸드폰을 열어 이체를 하려고 한다.
그 순간 내 눈에 띈 고지서.
“어?! 엄마, 그거 진짜 고지서 아니야.”
다급한 마음에 엄마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그거 보내면 안 된다고.
그런데 엄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아.”
“알아?”
“응, 알아.”
“근데 왜 보내?”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거 사기(?)인데 왜 당하고 있어.
“그래도 이런데가 힘들 때 도와주는 데야. 큰돈 아니어도 가끔은 이렇게 보내주면 좋은데 쓰일 거 아냐. 언제 어떻게 힘들어질지 모르는 거야. “
스미싱 문자, 보이스피싱, 이상한 고지서, 사기 수법 이런 말들을 하면서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해뒀는데…
이 나쁜 세상에서 엄마 아빠를 지켜줘야 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는 틈틈이 세상에 안전망을 만들고 있었구나.
조용히 누군가의 세상을 지키고 있었구나.
내가 세상의 나쁜 것들만 보고 있을 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라고
좋은 것을 늘리고 있었구나.
나는 항상 계산하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고 있었는데…
이렇게 누군가를 돕는 데 망설이지 않을 수도 있는 거구나 싶었다.
큰돈도 아니고, 화려한 선행도 아니지만,
나쁜 세상 속에서도 이렇게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거구나 하고 마음이 정화되었다.
불타는 산, 무너진 집, 어려운 사람들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내가 다 책임질 수는 없다고, 이 코 묻은 작은 돈으로 뭘 하겠느냐고, 내 삶부터 바로 서야 된다고, 내 삶이 너무 팍팍하다고 눈을 가리고 마음을 얼버무려왔다.
그런데 엄마 덕분에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산 없이 행동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완전히 계산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기부를 하면 세액공제가 된다. 절세에 도움이 된다)
엄마 덕분에 나도 이번 산불 피해 모금에 작은 기부를 해보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누군가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힘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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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찔끔 오다 말았다. 조금 더 쏟아져야 할 텐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