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는 입만 턴다고?
믿지 못하겠지만,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마케팅이 뭐냐고? 일종의 삐끼인거지.”
라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편의상 그를 ‘삐끼남’이라고 하겠다).
삐끼.
호객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었다.
주로 유흥업소의 호객꾼을 의미한다.
(나는 특정 직업을 비하하거나 낮추려는 의도가 없다.
그러나 삐끼남은 그러한 의도를 갖고 말한 것이라는 데에 내 아이패드를 건다. 아이패드 프로다…
그리고 이 글은 특정 직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오해 없으시길…)
10년도 더 지난 옛날이지만 아직도 우월의식에 젖어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을 낮추어 말하던 삐끼남의 말투가 생생하다.
‘삐끼’라는 단어를 회사에서 들을 줄이야.
삐끼남은 아주 적절한 예시를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삐끼가 하는 일이 사람 끌어오는 거잖아. 똑같네.” 하며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었던 것조차 또렷하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삐끼’라는 회사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단어 때문인지, 오만한 태도 때문인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눈치만 봤던 그 상황의 불편함 때문인지 삐끼남의 대사는 내 기억 속에 꽤 오래 자리 잡았다.
갑자기 삐끼남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주 오랜만에 삐끼남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승승 장구하며 임원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아, 그 회사 퇴사하길 잘했다.’ 고 생각했다.
말 한마디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일을 함께하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삐끼남은 마케터만 낮춰보지 않았다.
기획, 영업, 컨설팅, 개발… 모든 직무는 다 그의 발아래 있었다.
그곳에 남아있었더라면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지만 나도 삐끼남의 팀에 있을 때는 우리 팀이 하는 일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적이 잠시 있었다(세뇌라도 당했던 것 같다…).
팀을 벗어나고 보니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각각의 악기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면서 오케스트라가 연주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피아노 독주 같은 인생을 살던 그는 모를 것이다.
남이 하는 일은 다 쉬워 보인다.
특히나 고수들이 하는 일은 정말 쉽게 느껴지곤 하는데,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들이 눈을 감고 양파를 종잇장처럼 썰거나, 정확한 무게로 식재료를 척척 담아내는 모습에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운동선수들이 쉽게 하는 자세나 운동법은 왜 이리도 간단해 보이는지…
최근에 함께 일했던 기획자 중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단기로 계약된 기획자가 계셨다.
오랜 기간 기획 대행사에서 근무하신 시니어여서 그런지 상세 기획서를 쓱 쓱 꼼꼼하게 그려내곤 하는 분이었는데,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내가 그분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인수인계를 하는데 시니어 기획자분의 설명을 듣고 있으니 너무 간단한 일 같아서 ‘그냥 하면 되겠구나’ 했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고려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
쉬워 보였던 일이었다.
그분이 고수였기 때문에!
(속았다…)
여기서 내가 느낀 건,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남의 일을 판단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힘든 만큼 타인의 일도 힘든 일이라고 가정해야 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마케팅은 삐끼’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았겠지.
사람이 하는 말에서 여러 가지가 드러난다.
나는 ‘삐끼’라는 단어에서 오만함과 저급함,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 동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삐끼남과 같은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바닥을 보여줘서 고맙고,
위기의식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고,
깨달음을 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고오오맙습니다?)
훠우! 최고다! 삐끼남!
파이팅, 삐끼남!
오늘의 사자성어인 ‘반면교사‘를 떠올리며, 이제 침대에 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