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는 대만 파티걸이 되었나
클럽이나 나이트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재미 삼아 한 번 가볼까?” 싶어 들른 게 전부였다.
친구들은 단 한 번도 내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늘 술에 취한 친구들 뒤치다꺼리를 하던 게 나였다.
그랬던 내가,
대만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클럽을 찾는 ‘파티걸’이 되어 있었다.
서울 여행을 하던 어느 날,
젠틀몬스터에서 선글라스를 사고 받은 디저트 쿠폰을 쓰러 팝업 매장에 들어갔다.
옆자리 대만 사람들이 “이게 한국 전통 디저트야?”라며 궁금해하길래
오지라퍼 본능이 발동했다.
“네, 이거 떡으로 만든 전통 디저트예요.”
신나게 설명하다가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들은 타이베이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우리가 클럽 운영하니까 초대할게”라고 했다.
타이베이에 온 뒤, 긴가민가하면서 연락을 해봤다.
흔쾌히 반겨주길래 용기를 내어 클럽에 갔다.
알고 보니 그들은 클럽 지분을 가진 멤버 중 하나였고,
나는 클럽 MD까지 소개받았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
두 번째는 심심해서,
세 번째는 거기서 만난 친구를 다시 보려고.
그렇게 발걸음이 늘어나면서
나는 어느새 ‘자주 오는 손님’이 되었고
DJ 부스 뒤에서 술을 얻어 마시는 꼬맹이가 되어 있었다.
도파민이 터지는 순간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 감각에 중독된 나는 결국 파티걸이 되어버렸다.
가이드 일은 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그 공허함을 클럽에서 오는 도파민으로 메우려 했지만,
결국 공허함은 배가 되었다.
집에 멍하니 있으면 불안감이 몰려왔고,
“너 오늘 안 와?”라는 친구들의 전화에
“왜 이제야 부르냐”는 듯 달려 나갔다.
당시에는 가이드들끼리 술 마시며 신세 한탄하는 것보다
차라리 클럽에서 몸을 흔드는 게 낫다 싶었지만,
나는 점점 피폐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매일 가던 곳이 아닌 새로운 클럽을 찾았다.
그곳에서 날벼락 같은 사건을 겪었다.
술에 취한 여자가 내게 술병을 던졌고,
순간적으로 몸을 피하자 눈앞에서 병이 깨졌다.
유리 파편이 사방에 튀었다.
다행히 다치진 않았지만,
그 순간 깨달았다.
“클럽은 원래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곳이구나.
이제 그만 다닐 때가 되었구나.”
클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은 인생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조금만 선을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지만
끝내 선을 넘지 않고, 이성의 끈을 붙잡은 채 파티걸 생활을 마무리했다.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철없다고 느끼면서도,
그때가 아니면 다시는 해보지 못할 추억들이었다.
그 수많은 경험은 또 다른 자양분이 되었고,
어쩌면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더 열심히 살아가는 힘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