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에 잠 못 이루던 날들

어쩌면 불안함은 청춘의 그림자일까

by 유니로그

첫 외국에서의 생활은 낯섦과 설렘이 공존했다.
밥을 먹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새로운 맛과 생경한 풍경에 늘 짜릿했다.


하지만 짜릿함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늘 가던 맛집, 빨래방, 자주 들르던 조찬집은 당연한 공간이 되었고,
도시의 풍경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거주인의 배경이 되었다.


이 도시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이곳에 녹아들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더 자주 이질감에 빠졌다.


새로운 대만 사람을 만나 ‘안녕하세요’라는 어눌한 한국어를 들을 때,
혹은 친구들이 진지하게 대만의 경제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나를 의식할 때,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 외국 청년일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 묻곤 했다.


외국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까? 한다면 대만 사람과 할까?

실제로 대만 사람과 연애로 이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대방을 떠나, 나 역시도 외국인과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압박이 몰려올 때,
나는 억지로라도 연애를 시도해보려 했고
상대가 진심이 아니라는 기운이 느껴지면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


불안은 관계에서만 오는 게 아니었다.
내 거처와 직업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다.
투어 가이드와 통번역은 일이 들어와야 수입이 생기는 프리랜서였고,
수입이 끊기면 월세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일거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했기에,
불안은 더 크게 자라났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언제까지 있을 거니?” “결혼은 안 하니?” “앞으로 뭐 할 거니?”
묻기만 했고, 그 질문들은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정작 내 불안을 털어놓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곪아가며 뜬눈으로 새벽을 맞는 날이 많아졌다.
안정감이 필요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일에 더 집착했다.

투어팀을 더 받고, 통역일을 알아보고,
스스로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으로 선택한 건
쉼 없는 움직임이었다.

일을 하고, 잠시 자고, 밤이면 클럽에 가고,
또 자고, 일어나면 밥을 먹고 산책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서 바람을 맞으며
머릿속을 비워내기도 했다.

그건 꽤 효과가 있는 방법이었다.

몸을 혹사시키며 불안을 잠시 숨기고,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도파민으로 눌렀다.

돌아보면, 불안에 떨던 시절에 오히려 나는 성장했다.

그 불안은 내 청춘의 그림자 같았다.
도망치려 해도 늘 따라붙었고, 피하려 할수록 더 짙어졌다.
하지만 그림자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결국 불안 덕분에 나는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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