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오랜 습관 중 하나가 길을 가다가도 좀 특이하거나 시선을 끄는 것들이 있으면 무조건 사진으로 찍어서 앨범에 저장해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저장해 둔 사진들이 가끔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습니다.
작년 11월, 영종도 한 카페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화장실 앞에 무심한 듯 놓여있는 화병의 꽃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순간 그림처럼 놓여있는 탐스러운 꽃송이가 캔버스밖으로 튀어나온 꽃인양 참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저 이쁘다는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휴대폰 갤러리를 정리하다가 이 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쁘기도 하지.' 속으로 감탄하며 봤던 꽃에서 그림자로 시선이 옮겨지는 순간, 화병뒤에 숨어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만약에 앞쪽 화병을 지우고 그림자만 보여주었다면 고양이의 그림자라고 답하실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사진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믿지 말아라."라고 말입니다.
저는 고양이 닮은 그림자를 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양이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순간... 이제껏 내 눈으로 봤다고, 그래서 진짜라고 확신하는 것들도 어쩌면 진짜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 참 무섭지 않나요?
믿을 사람 하나 없고, 그래서 오직 나 자신만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것조차도 오류투성이니 말입니다. 가끔은 사실이 아님에도 내가 사실이라고,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엄연히 보이는 사실임에도
- 그럴 리 없어,
- 아닐 거야,
-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종국에는
- 사실이 아니야... 하며,
그렇게 나의 믿음이 잘못된 확신을 만들게 되고 어느 순간 진짜로 둔갑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힌 사람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저 자기 말이 다 맞다고, 자기만 옳다고 믿으며,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다 틀린 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깊은 대화가 무소용이고, 또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신념이 아니기에 나의 작은 노력으로 바뀔 리 만무합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고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 또한 매 순간이 진실이었나...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으니 말입니다.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그것이 아님을 수정해주지 않았고, 혹은 관여하기 싫어서, 귀찮아서 그냥 모른 척 넘어간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 앞으로 우리들은 계속해서 누군가를 의심하며 불신의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일이고 순간순간이 고통일 것입니다. 늘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는 일들은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입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나 자신도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순간에도 진짜가 있었고 그와 같은 선상에 가짜도 늘 존재해 왔었습니다. 가짜가 존재한다고 하여 모든 것이 가짜는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확률 낮은 가짜 때문에 수많은 진짜들이 외면당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믿을 수도, 의심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