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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pr 07. 2023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진다.

아니 분명 그 벽은 존재한다.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밀어내거나, 돌아서 가거나, 그도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기대기라도 할 텐데, 보이지 않는 벽은 가끔은 괜찮으니 다가와도 된다는 희망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리 밀어내려 노력한들 소용없다는 듯 한없이 사람을 절망으로 빠지게 만든다.     

 

가까운 듯하여 다가가 손을 뻗으니 그때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단단한 벽이 만져졌다. 더 이상 다가오면 안 된다는 의미인가? 그 안에서 웃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내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벽의 반대쪽에서 바라보는 심정은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미치도록 힘들게 만들었다.     

조금의 틈도 없는 벽인지, 돌아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는지 요즘은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뭐가 문제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급하게 다가가려는 마음이 문제인가, 아니면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인가. 전자가 문제라면 서서히 스며들 듯 기다리면 되는 것이지만, 후자가 문제라면 더 이상의 노력이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다 잊고 떠나려고 한 발을 뗐다. 그런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발 멀어질 때마다 마음은 한걸음만큼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듯 더 아린 아픔이 느껴졌다.      


환상에 빠져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다.

욕심일 수도 있다.


괴로워하지 말고 잊어버리고 떠나자.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한 노래 가사에서는 마음이 변할 줄 몰랐다고 했다. 마음이 여러 개라면 변하지 않을까? 하나밖에 없는 마음을 나눠줄 수가 없어서 변하는 걸까? 


그런데 

변한 줄 알았는데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어 더 괴로워진다.


      

윤동주의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물론 이 시에 등장하는 사내는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이지만, 문학작품은 읽는 이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우물 속 그 사내가 미워져서 떠나려고 하나 가엾다는 생각으로 돌아갔고, 돌아가서 보니 다시 미워져 떠나려고 했다가 다시 그리워져 돌아가 바라보는 모습이 지금 누군가를 떠나려고 하나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렇게 심란하고 괴로운 걸까?


그것이 의문이긴 하다. 마냥 좋다고 하다가 갑자기 너무나 미워져 떠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투명한 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일방적 소통과 감정으로 지친 것일까?     

어쩌면 그 보이지 않는 벽은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죽박죽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하나씩 찾아 풀어보는 중이다.

그 벽이 사라지는 날 다시 한걸음 다가가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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