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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pr 12. 2023

혼자 걷기

-내 인생의 절정

 오늘이 지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가봤자 이미 다 졌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했지만, 절정이 지났으면 또 어떠한가? 그 끝마무리라도 눈에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차에 시동을 걸고 인천대공원으로 향했다.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 어느 곳에 주차할지 고민했다. 마지막 벚꽃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정문 주차장으로 가면 한참을 돌거나 자칫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서 낭패를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은 늘 가는 곳인 남문 쪽 도로변에서 주차 공간을 찾기로 했다. 일단 가보고 없으면 다시 정문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는데, 다행히 조금 걷기는 했지만 주차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차라서 좋은 점이 바로 조금의 틈이 보이면 주차가 가능하다는 것. 뭐 좀 있으면 이것도 없어질 기쁨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 운이 좋은데?’


주차하고 최소 두 시간은 걸을 생각에 무선이어폰을 꺼내 착용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담아둔 플레이 리스트를 열어 첫 곡을 플레이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으스스할 정도로 날씨가 좀 쌀쌀하게 느껴졌다. 몇 걸음 걸어갔을 때, ‘훅~’하고 바람이 불었다.      

그 순간


‘눈이 내리나?’ 싶을 정도로 꽃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좋다.’


노래도 좋고, 꽃눈도 예쁘고, 순간 ‘그래, 오기를 잘했다.’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오래간만에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을 다녀오는 바람에 다리가 매우 아팠지만, 흩날리는 벚꽃을 보니 오히려 빨리 공원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에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까지 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양쪽 인도뿐만 아니라 가운데 도로에도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걸어오고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마침 오늘이 인천대공원 벚꽃축제가 있는 날이었던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또는 연인과 함께 마지막 벚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좋은 배경을 뒤로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바람에 날리는 꽃잎을 잡으려고 이리저리 손을 뻗어보는 아이들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나는 혼자다.     


평소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주변 지인들은 심심하지 않냐고, 외롭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워낙에 시끄럽게 왁자지껄 떠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일주일에 하루쯤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신조이기도 하다.

물론 혼자 다니면 아쉬운 점도 있다. 셀카밖에 찍을 수 없다는 것. 나는 연예인들이나 셀럽처럼 셀카 장인이 아니니, 수십 장을 찍어야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얻을 수 있을까 말까. 좀 멀리서 찍으면 그나마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뭐 멀리서 찍는다고 결과물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여담이기는 하나 이제까지 노래방이라는 곳을 채 10번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더 큰 문제는 노래를 못한다는 것. 물론 잘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은 좋아하나 절대 남 앞에서 노래는 부르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분위기가 재미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고 보니 혼자 다니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차에서 무한 반복으로 듣는다고 지겹다고 할 사람도, 몰래 따라 부른다고 해서 부끄러운 솜씨를 엿들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노래는 좋아하나 부르는 것이 자신 없을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야 하나하나 따지면 수없이 많이 있을 수 있지만, 내가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혼자서 목표를 정해두지 않고 무작정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고, 그런 과정에서 나름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고민이 있거나, 특히 머릿속이 이런저런 생각들로 뒤엉킬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신경 써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주고받는 대화가 시시한, 그래서 의미 없는 이야기들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옆에 있는 누군가를 신경 써야 하는 부담을 내려놓고 그저 내 맘대로, 발길이 이끄는 대로 다니며 자유롭게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꼭 그렇게 대단한 말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녹색으로 짙어지고 있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무념무상으로 걷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요즘 고민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무엇인가 할 일들이 많은데, 뭐 하나 시원하게 되는 것이 없다는 느낌. 이게 맞나 싶지만, 인생에 정답이라는 것이 없기에 똑 부러지는 정답을 알려줄 사람 또한 없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추천게시물 중에 정말 나에게 딱 맞는 글귀를 발견하고 스크린샷으로 저장해 놓은 것이 있다.


 [ 출처 : s_h93k /작가 김상현 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



‘조그만 걱정’이 ‘대왕 걱정’이 되는 그림이었는데, 걱정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작다가도 생각하면 할수록 몸짓을 더 키우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작가님이 그림으로 그려서 올려준 게시물이 너무 재미있어서 팔로우하고 댓글을 남겼었다.  

    

[조그만 걱정이 대왕 걱정이 되는 사람.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자꾸 걱정에 먹이를 줬나 보네요.... “그럴 수 있지.”라는 말 기억할게요~^^]


다음날 작가님의 댓글이 달려서 놀랐다. 일일이 읽고 댓글을 써주시는구나 싶어서 잠시 마음 안으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해서 조금이라도 덜어지면 좋을 텐데, 정말 희한하게도 처음엔 정말 작은 것 하나가 생각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리는 때가 있다. 마음을 어찌할 수없어 괴로운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생각을 말자 한다고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 걱정에게 먹이 주기 금지 ]

'그럴 수 있지.'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러니 괜찮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생각했다.      

올해는 이걸로 끝이구나. 사람에게도 벚꽃처럼 인생의 황금기라 불리는 절정이 있을 터. 나의 절정은 이미 지난 것인가 아니면 지금 그 절정을 위해 준비하는 단계인가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절정이 지났다고 하기엔 내 인생에서 딱히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고, 그렇다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과 매년 어김없이 차곡차곡 쌓이는 나이에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며 나는 또 걱정이란 놈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 ‘그래 그만하면 잘 살았지 뭐.’하고 위로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인가.

- ‘그것밖에 안 되나.’ 하면서 더 다그쳐야 하는 것인가.


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런데,

벚꽃이 진다고 그걸로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 않을까? 꽃이 지면 푸르른 녹음이 그 자리를 채운다. 무더운 여름에는 예쁘기만 한 꽃보다는 푸르른 잎사귀로 햇빛을 가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황금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짜 끝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벚나무처럼 꽃만 진 것일 뿐 제2의 황금기인 푸르른 녹음을 준비하는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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