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눈

7화 엄마의 노트

by sy

엄마는 그렇게 아빠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뭐든지 알아서 다 해주었던 아빠의 빈자리를 하루하루 실감하며 느꼈을 엄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단지 공과금 청구서나 우편물이 와도 대신 봐줄 사람이 없다는 불편함 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잘 모르는 외국어를 대할 때 느꼈을 난감함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엄마는 어쩌면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말 못할 부끄러움에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누가 볼세라 훔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한가지 다행인 것은 시골 마을이 풍천 임씨 집성촌이라 다들 형님 아우 하면서 살아온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한 친척들이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움 없이 물어볼 수 있고, 어쩌면 묻거나 도움을 청하기 전에 불편함을 살펴주는 그런 사이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은행에서 출금할 때 본인 서명을 하는 것이 바로 엄마의 첫 번째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아주 예전에만 해도 시골에서는 은행 직원들이 대신 이름을 써주고 현금인출을 도왔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언젠가 엄마가 한밤중에 ‘이정주’라는 본인의 이름을 수없이 연습한 노트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뭐냐고 물어봤더니, 은행에 돈을 찾으러 가니 이름을 쓰라고 하는데 자꾸 까먹어서 혼자 연습한 거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 세 글자를 기억 못 해서 노트 한 권을 다 쓰도록 연습을 하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싶었는데, 본인의이름 석자를 쓰는것이 당시 70대 중반의 엄마에게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몹시 어려운 숙제와도 같았던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노트를 꺼내놓고 이름 세글자를 쓰고 또 써내려 가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뭐든 만능으로 다 해주셨던, ‘당신은 나 없이 못 산다.’라고 말해놓고 먼저 떠나신 아빠를 그리워했을까요?

아니면,

-어렵고 힘든 시절,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딸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학교를 보내주지 않으신 외할아버지를 원망했을까요?


나는 자격이 없는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엄마가 한 살이라도 더 젊으셨을 때, 지금보다 조금 더 총기가 있으실 때 글을 가르쳐드릴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는지 한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 정. 주. 라는 이름을 노트에 꾹꾹 눌러 써 내려간 엄마의 노트를 보고 코끝이 찡해져, 들키지 않도록 얼른 화장실로 가서 눈물을 닦았습니다.


“우리 엄마 글씨 예쁘게 잘 쓰네.”


하고 웃음으로 넘겼습니다.

사실 엄마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씨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마, 글씨 쓰는 순서가 있는데….”


하면서 알려주려다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그렇게 하나하나 글자를 그려내는 것도 혼 힘을 다해야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