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제기: 강한 여신 vs. 억압받는 여성
본 에세이의 제목과 같은 책이 있다.: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 남아시아 여신의 정치학 (Is the Goddess a Feminist?).” 이 책은 인도 여신 전통에 대한 현대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하여 박진감 있게 그려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참여한 15명의 저자들은 “인도의 여신 전통은 인도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가(empower)?”라는 질문을 출발점으로, 여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 각자의 결론을 내린다.
[그림 1] 시와 음학, 학문의 여신인 사라스와티 여신 여신 전통에 관한 한 인도는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들과 이미지, 그리고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에서 우리는 다양한 이름과 외모, 성격과 이야기들을 가진 여신들을 만난다. 행운과 부의 상징인 락슈미, 시와 예술, 학문의 여신인 사라스와티, 해골을 목에 두른 파괴적인 힘을 가진 그러나 따르는 자에게는 사랑과 연민이 가득한 칼리 여신 등등. 이 세 여신은, 인도의 남신 트리니티를 이루고 있는 비슈누, 시바, 브라흐마의 배우자로 알려져 있기도 하며, 역시 인도의 여신 트리니티를 이룬다. 이 여신들은 남신의 배우자로서 남신과 함께 숭배되기도 하며, 또한 단독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이 세 여신 이외에도, 악마를 무찌르고 세상을 구한 데비 마하트미야에서 여신의 이름인 두르가(Durga: hard to pass “지나치기 힘든”), 시바를 배필로 얻기 위해 고행하는 여신 파르바티, 시바의 반쪽으로 등장하는 샥티... 그리고 수많은 지역의 다른 이름과 지역적 이야기들을 가진 여신들…
[그림 2] 악마 라타비자의 피가 땅으로 떨어지는 그 방울방울이 모두 다시 악마로 태어나고 있고, 칼리가 그 악마의 피를 다 마셔버리는 장면 그러나, 다양한 신들은 결국 하나인 절대자의 발현이라는 믿음에서처럼, 수많은 인도의 여신들 역시 하나인 여신의 발현들이다. 이러한 여신의 “신학화”의 시도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작품 중의 하나가 6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르칸데야 푸라나의 “데미 마하트미야”이다. 여기서 악마를 무찌르는 에피소드들에서 데비(Devi: 여신)는 여러 이름으로 등장한다. 마히사(Mahisa)라는 악마를 무찌르는 두르가 여신은, 악마의 유혹을 대담하게 물리치는 아름다운 파르바티이며, 무시무시한 악마인 락타비자(Raktabija)의 피를 다 마셔버림으로 악마를 말려 죽이는 악마보다 더 악마적인 칼리 여신이기도 하며, 또한 여신의 몸에서 나온 수많은 샥티들이기도 하다.
다양한 여신의 존재, 특히 칼리와 두르가와 같은 파워풀하고 독립적인 이미지의 여신은 페미니스트와 젠더 이슈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매혹적으로 비쳤다. 아마도, 인도인들에게는 인기가 높은 여신 락슈미는, 그 전형적인 여성적 아름다움과 부유함, 그리고 남신 비슈누의 파트너로서의 현숙한 이미지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가장 인기가 없는 여신인 것 같다. 이런한 “서양인/서양 여성에 의한 인도 연구”라는 맥락 안에서 인도 여신과 인도 여성에 대해, 아마도 자연스러운 그러나 동시에 문제적인 도식이 등장한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인도 여신들 vs. 가부장제에서 억압받는 인도 여성.”
여성적 원리들: 프라크르티(Prakrti: nature, 자연), 샥티(Shakti: power, 힘)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인도 철학에서의 주요한 젠더 관련 이슈를 간략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신 전통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주로 등장하는 주제들은, 인더스 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조각상들, 베다에 등장하는 여신들, 그리고 푸라나 문헌들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여신들과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각 지역의 여신 전통들... 인더스 문명의 조각상들이 여신을 나타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며, 베다에서는 남신보다 그 역할이 주도적이지 않다고 주로 이야기된다. 푸라나에서 남신과 여신의 주도권은 공존하는 것으로 보아지며, 이는 푸라나 전통과 공존한 신애 전통(bhakti)의 여신 숭배 전통의 힘으로 보아진다.
철학적으로는, 앞선 에세이에서도 살펴보았던 상키야 전통의 푸루샤-프라크르티 이분법에서 젠더화 된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프라크르티는 여성적인 원리로 활동적이고, 내재하는 물질성이다. 그 파트너 푸루샤는 남성적 원리로 여겨지며 비활동적이며, 초월적인 순수의식이다. 활동적인 자연이라는 여성적 원리로써의 프라크르티, 비활동적인 순수의식이라는 남성적 원리로써의 푸루샤는 인도 철학 전통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여성적 원리의 대표 격은 샥티(Shakti)일 것이다. 샥티는 “힘, 에너지 (power, energy)”를 나타내는 여성형 명사이다. 샥티는 여러 가지로 설명되는데, 남신에 내재한 혹은 남신으로부터 나오는 창조적인 에너지로 이해되기도 하고, 여성의 생산하는 능력, 혹은 시바의 부인인 샥티 여신 등. 프라크르티와 푸루샤의 이분법에서처럼, 남신과 함께 등장하는 여신, 혹은 에너지로서의 샥티는 남신에 비해 다소 이차적인 위치를 부여받는 것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여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철학적 구분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탄트리즘과 샥티즘 전통에서 여신과 여신의 샥티는 다른 전통에서 남신이 부여받은 거의 모든 능력을 갖는다. 샥티즘에서의 샥티는 우주를 창조할 뿐 아니라, 만물에 깃들이며, 다스리고, 보호한다. [각주 1]
다양한 해석의 목소리들 1.
서구화된 인도 남성 vs. 히말라야 산 중턱 마을에 사는 인도 여성
위에서 소개한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라는 책의 저자들은 이 “강한 인도 여신과 억압받는 인도 여성”이라는 도식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고 말한다. 책의 서문에서, 에른들(Kathleen Erndl)이 소개하는 에피소드는 이런 양가적 평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인도에서 1년간을 보내면서, 여신 바이슈노 템플의 순례까지 경험했던 나는 인도 여신에 대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쓰고자, 인도에서 온 저명한 남성 교수를 만나러 한 대학 캠퍼스를 방문했다. 기대와 야심에 차서 박사 논문 계획과 여신과 여성과의 관계라는 주제까지 이야기하는 나에게, 그 존엄하신 교수님은 갸우뚱하시며... 잠시 무언가 생각하시는 듯이 계시다가 살짝 산만해진 느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우리는 여신을 여신으로(as goddesses) 좋아하지 사람으로(as people) 좋아하지는 않아요.’ 대화는 그렇게 갑자기 중단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름 자리가 잡힌 학자가 되었고, 현재 히말라야 중턱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이 마을의 여성들과 함께, 여신의 힘으로 병을 치유하는 “존경받는 어머니 (Mataji: 마타지)”라고 불리는 여성 구루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마타지의 등장! 오랜 지병에도 불구하고, 오렌지색 살와-카미즈(salwar-kameez: 바지와 긴 튜닉으로 이루어진 인도 전통 여성 의상)를 입은 마타지는 강하고 화려한 풍모와 함께 빛나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네요!”라고 감탄하는 나에게, 옆에 있던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왜 아니겠어요? 그녀는 여신의 힘(the shakti)을 가졌거든요. 그녀는 여신 그 자체(the Goddess herself)예요!” [각주 2]
서구 페미니스트 학자 vs. 인도의 남-녀 순례자들
흄(Cynthia Humes)은 데비 마하트 미야의 신화에도 등장하는 빈디야찰(Vindhyachal)이라는 북인도의 한 지역에서의 필드 워크 경험과, 신화 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위의 “데비마하트미야는 페미니스트 경전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하고자 한다. 그녀의 결론은 ‘예스’와 ‘노’ 둘 다를 포함한 ‘예스’다. 그녀는 필드워크에서, 데비 마하트미야의 데비와 보통의 여성들과의 차이점과 같은 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54명의 남성 순례자들과 25명의 여성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남성의 96프로가 편안하게 인터뷰에 응한 반면, 여성은 60프로 만이 응했다; 놀랍게도, 70프로가 넘는 대답에서 이 둘-여신과 여성-은 닮은 점이 거의 없으며, 심지어 어떤 대답에서는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 대답도 있었다; 오직 4명의 대답에서만 이 둘 간의 유사점을 주장했다; 또한, 샥티라는 개념으로 유사점을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오히려 샥티는 여신과 여성의 차이점을 이야기하는 데 이용되었다. [각주 3]
데비마하트미야가 영미권의 다수의 학자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신”이라는 페미니즘적 비전을 주고 있었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는 실로 충격적인 경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데비 마하트미야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에 대해 무지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데비마하트미야는 위대한 여성에 대한 신화가 아니라 위대한 여신(the Great Goddess)에 대한 것이고, 심지어 단순히 한 여신(“a goddess”)에 대한 것도 아니라는 것; 데비의 본성은 여성의 본성에 대한 직접적 모델이 되어주기보다는 보통의 여성과는 다른 점으로서의 모델이 되어준다는 것… " [각주 4]
다양한 해석의 목소리들 2.: 인도 여성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역사
인도 여성에 대한 서구 학계의 관심이 시작된 맥락은, 아마도 연구자와 연구 대상 간의 교류나 상호 이해가 매우 부족했다고 보아지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문화 정치학일 것이다. 이 시기에 인도 남성들은 유약한 여성적 존재로 그려지거나, 여성의 권리는 아랑곳 않는 가혹한 가부장의 모습으로 종종 그려졌고, 따라서 여성은 이러한 비겁하고 가부장적인 인도 남성들에게 억압받는 불쌍한 존재로 그려졌다. 반면 인도 남성들은 인도 여성들을 영국의 식민통치 아래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이 시절, 인도와 영국의 남성들이 만들어낸 인도 여성에 대한 이 “희생자”의 이미지는, 인도 여성 자신들의 목소리가 부재한 채 형성된 것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독립 후, 서구 학계의 인도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한 접근에서 두드러진 관심은 인본주의와 페미니스트적인 내용의 “성평등(gender equality)”에 대한 것이었다. 사회적 억압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여성 문제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는 구전 전통보다는 문헌 전통에 초점을 두고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 초반까지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고 보아진다. 많은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은, 인도 사회와 문화의 가부장적 경향에 대한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에 동의했으나, 이러한 서구식 성과 평등의 개념은 인도 문화와 여성들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페미니스트라는 이름 자체를 거부하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이르러 인도 보통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학자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했고 이를 실천하는 학자들의 그룹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도 여신과 여성 관련 이해에 있어서 이 시기에 인류학자들의 공헌은 지대했다. 그들은 인도 여성들이 인도 전통 일반과, 여신 전통, 그리고 그녀들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풍부하게 학계에 전달해줌으로 여신과 여성을 둘러싼 복잡한 젠더 이슈에 대한 학계의 이해를 도왔다. 이들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에는 인도 문화가 본래 갖고 있던 구전 전통에 대한 중요성을 학계에 환기시켰다는 점도 있다. 문서화를 효율적인 전통 정승의 수단으로 여기는 서구 문화와는 달리, 인도는 구전 전승을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여겨왔다. 이 시기에 인도 여성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여성 인류학자들 중에는, 일반 인도 여성들이 주도하여 이루어지는 가정 내에서의 여신 관련 의례와 스토리 텔링 등의 전통에 주목하여, 구전 전통이 여성들의 위상에 기여하는 바를 깊이 조명한 학자들도 있다. 필자의 지도교수도 그 중 한명이었고, 그 교수님과의 공부를 통해 필자는 인도의 영성문화라는 것이 고전문헌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철학적 개념들은 일반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에도 깊이 배어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림 2] 전쟁 후 승리에 취한 칼리가 남편인 시바를 밝고 있는 모습 마지막으로 인도 여신과 여성, 그리고 서구 학계의 관심을 이야기할 때, 종종 지적되는 비판적인 사례들 두어 개를 짚어보자. 많은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파워풀하고 공격적인 여신 칼리가 인도 여성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여겼으나, 실상은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발견되었다. 칼리는 공격적이고 강력한 반면, 종종 “조절 능력이 없는 그래서 통제하에 두어야 하는 여성의 힘”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 이러한 여성의 힘에 대한 부정적인 이해는 인간 여성과 신인 여신의 존재론적 차이를 강조할 때 더욱 강화된다. 또한 여신 칼리의 이미지로부터 서구인들이 보고자 했던 “폭력적인 성 (violent sexuality)”은 대다수의 칼리를 섬기는 인도인들에게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또 다른 예로, 순종적이고 자애로운 배우자의 이미지를 가진 여신들 – 락슈미 같은 – 은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여성상을 이상화함으로 여성에게 억압적일 수 있다는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는 동의하는 여성들도 있었지만, 많은 인도 여성들은 실제로 가족과 공동체에서의 그녀들의 역할을 통해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는 – 여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 경우도 많았고, 그렇게 스스로를 여신의 파워인 샥티(shakti)를 공유한 존재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키쉬와르(Kishwar)는 다음의 말은 이런 복잡한 젠더와 문화의 맥락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는 서구 페미니즘이 그 나름의 특수한 조건과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또한 “여성들이, 자신들이 속한 시대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 느끼게 되는 마음의 동요와 저항이 어떤 열망과 성격을 드러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각주 5]
입장 정리…
이상에서, “인도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 혹은 “강력한 인도 여신은 인도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나?”와 같은 질문에 대한 입장들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너무 단순한 결론인 것 같기는 하지만, 살펴본 다양한 입장들에서, 여신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여신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와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비록 신과 여성의 존재론적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할지라도, 여신의 이름을 가진 수많은 인도 여성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여신들의 가장 강력한 아이덴터티가 “어머니 여신”이라는 사실을 볼 때, 인도 여신이 인도 여성들에 대한 이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인도의 거의 모든 지역에 지역 여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인도인의 종교적 상상력에서, 여신은 삶의 기반인 “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인도의 독립운동의 상징적 기폭제가 되어준 것 역시 “어머니 인도” (Bharat Mata: Mother India)가 아니었는가!
또한 더구나 인도 여성 스스로가 증언하는 여신에 대한 연관성, 그리고 암묵적이거나 혹은 거의 드러나는 여신과의 동일시. 어떤 인류학자가 쓴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울던 여자 아기에게 락슈미라고 불러주니 울음을 뚝 그쳤다는… 여신의 이름이 수없이 낭송되고, 찬양되고, 여신의 그림과 조각들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사원에 길가에 가득한 여신상들,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여신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인도인들이 보는 여신과 여성의 관계는 외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여성성을 위한 자유 상상 1: 지평의 확장, 여성적으로 남성적인(?) 여신
또한, 여신은, 그 성은 여성이지만, 그래서 남성에게 더 호의적이거나, 혹은 여성에게 더 호의적이거나 하는 식의 이슈는 없는 것 같다. 여신은 여성 신인 것은 분명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여성성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데비 마하트미야의 여신은 우리가 흔히 여성 혹은 남성에 부과하는 자질들을 둘 다 갖고 있고. 흄은 이러한 사실이 갖고 있는 철학적 함의를 발견한다.
흄에 의하면, 데비 마하트미야에서는, 일반적인 여성성에 대해 비하하는 내용이 부재한 반면 데비의 성격은 여신과 남신의 덕목을 다 갖고 있다. 심지어 남성적 언어를 여신의 덕목으로 묘사함으로 여성성이라는 덕목의 미학적 확장을 꾀한다. 한 예로, 여신의 악마를 무찌르는 영웅적 성취를 이야기하면서 이 신화는 “virya”(heroism: 무용, 영웅적 자질)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이 단어는 보통은 남성 혹은 남신들의 영웅적인 면모에 대해 쓰이는 단어이고, 이 신화에서 여신과 용감히 싸우는 – 결국 패배하지만 – 악마들에 대해서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남신의 정자를 상징하는 씨앗(bija)이라는 단어, 그리고 악마 락타비자의 피가 땅에 떨어질 때, 그 피로 인해 다른 악마들을 낳는 땅(the earth)과는 달리 악마의 피를 마셔버리는 칼리… 등 데비 마하트미야에서 데비의 여성성은 남신의 남성성을 포함하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흄은 신화의 일부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데비 마하트미야에서 여신은 모든 것의 근원(bija: seed, 씨앗)이며 무한한 영웅적 자질(virya)을 가졌으며, 비슈누의 힘(shakti)이며, 마법의 힘/환상(maya)이다. 악마들과의 전투에서 데비는 빛나는 여성성을 보여주며, 그녀는 자신 내에 무한이 있는 힘(Shakti)으로부터 우아하게 전투를 전개해 나간다. [각주 6]
여성성을 위한 자유 상상 2: 박티(bhakti)로 공유되는 여신의 샥티(shakti)
인도 여성학자 나라야난(Narayanan)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많은 인도 전통에서, 박티(devotion: 신에 대한 사랑, 신앙)와 샥티(shakti: 힘, 파워)는 여성 종교성의 주된 요소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인도 신학에서는 순종(surrender)과 헌신(devotion)은 힘을 갖게 한다” [각주 7]
나라야난은 비슈누 전통에서 추앙받는 12명의 성인들 중 유일한 여성인 앙탈(Antal)을 예로 들어 그녀가 박타(bhakta: 신을 섬기는 사람)로서 보여준 여성으로서의 예외적인 삶이 어떻게 후대에 그릇되게 전용되었으며, 또한 다시금 새로운 롤 모델로 작용할 수 있는 지를 이야기한다.
“후대의 전통은, 그녀의 삶과 그녀가 지은 시가 보여주는 당시 브라만 중심의 사회 관습에 대한 저항의 정신은 무시한 채로, 이 여성 성인에게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아내의 이미지를 부여함으로, 그녀의 삶과 시를 전용했다. 박티 전통에서 신자의 위상이라는 것은 모든 사회적 구분과 위계를 초월한다. 그래서 이들 여성 성인들은, 그녀들이 여성에게 요구되는 정상적인 삶을 거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존경받는 것이고, 그렇게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결혼과 다른 사회적 요구를 거부한 미혼의 여자가 신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았다: 이는, 여성을 미혼, 기혼, 그리고 과부로 구분하는 다르마 전통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형이다. 여성의 삶이 남편 없이 가능하다는 것, 그들의 노정이 직접적으로 절대자를 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이 여인들은 오늘날 수많은 여인들을 고무한다. “ [각주 8]
나라야난은, 몇몇 현대 여성 구루들에 대해서도, 그녀들이 다른 여성들을 위한 기회를 창조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박티(shakti)로 충만해 있는 그녀들은 순종의 역학을 통해 샥티 혹은 힘(shakti)의 화신이 된다”라고 코멘트한다. [각주 9]
나라야난이 여기서 설명하는, ‘힘(Shakti)을 주는 순종(surrender)’이라는 박티 전통의 다이내믹은, 몇몇 여성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북인도의 지역에서, 인도 여성들이 주도하는 가정 내 의례인 브라타(vrata) 의례에서도 발견된다. 브라타(vrata) 의례는 주로 여성들이 가족 구성원들의 안녕을 비는 서언(vrata: vow)을 하고서, 금식과 함께 신에게 드리는 의식이다. 그 목적에 있어서 매우 가부장적 이상에 충실하게 들리지만, 의식을 행하는 과정 자체는 거의 다 여성들에 의해 주도되며, 여성은 의식의 주도자이자 참가자로서, 그리고 금식이라는 시험을 성공적으로 해냄으로써 가족의 안녕에 기여하게 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게 된다. 이 의례의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하는 스토리 텔링 역시 흥미롭다. 실제 이 의식의 디테일들은 브라흐만 사제들이 주도하는 리츄얼의 많은 요소들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느낌을 주는 것들이 많다. 여성들은 여기서 일종의 사제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며, 이 스토리 텔링 부분은 사제들이 만트라나 산스크릿 문헌을 낭독하는 것을 대체한다고 보는 입장들도 있다. 이 스토리 텔링은 여성들이 행하고 있는 의례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인 경우가 많으며, 이 의례와 관련된 여신의 힘, 이 의례 자체의 힘, 그리고 이 의례를 실행함으로, 여성 참가자들이 여신의 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스토리와 의례를 매개로, 이야기 속의 여신의 힘이 여신의 박타들인 여성들에게 흘러 들어온다. [각주 10]
데비 마하트미야를 통해, 흄은 남성적 상징인 영웅적 자질을 여성적 상징으로 변화시키는 내러티브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데비 마하트미야의 남성성과 여성성의 범주를 넘나드는 내러티브의 유희가, 이 스토리 텔링 전통에서는 여신과 여성이라는 두 범주를 넘나들며 여성에게 여신과 같은 파워를 전해 준다.
수다스러운 마무리
처음에 제기되었던 문제적 구도 “강한 여신, 억압받는 여성” 의 대조는 이미 그 유통기한이 좀 지난 도식 같기는 하다. 왜 서양 학자들은 인도 여성들에게 “희생자”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집착해 왔을까… 이다. 물론 가부장제에 희생되는 희생자들은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그 문화를 대표하는 정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표적인 모습인 것처럼 부각하여 보여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질투일까… ?
처음 유학을 갔었던 미국 대학에서 인도 관련된 전시회 시리즈가 열린 적이 있었다. 그중 사진전이 있었는데 인도에서, 갈 곳 없는 여성들이 모여있는 어떤 기관에 사는 그 여성들의 모습들을 찍은 것들이었다. 비참하고 슬픈 인도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보는 이에게 분노와 슬픔을 자아냈다. 그 전시회가 있고 하루였던가.. 이틀이었던가 곧바로 다른 사진전이 열렸다. 거기에는 그 대학의 인도 전공 교수들, 그리고 인도 유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며칠 전에 열렸던 그 불쌍한 여인들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 사진전에 대한 맞불 사진전이었다. 이 맞불 사진전에 참석한 인도 여학생들, 인도 전공 관련 교수들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필자의 지도 교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또 다른 일련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인도에는 그렇게 불쌍한 여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행복하게 가족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성장해 온 많은 자랑스러운 인도의 여성들을 보여줬다.
Water라는 매우 슬픈 인도 영화가 있다. 카스트와 여성 차별의 어두운 면을 그린 영화다. 유학 시절, 같은 과의 미국 대학원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인도 소개를 위한 영화로 이 영화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대화가 이메일을 통해 오갔었다. 쇼킹한 아이디어였다. 이것은 마치 연쇄 살인범 영화를 통해 미국을 모르는 이에게 미국을 소개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징어 게임을 보여주면서 이게 바로 한국의 일상적 모습이라고 한국을 모르는 이에게 소개하는 것과도 같은 경우일 것이다.
[그림] "Sita sigs the blues"의 한 장면 (악마 라바나에게 납치되었다가 구조되어 돌아온 시타가 사람들의 의심을 받자, 라마 역시 시타를 변호해 주지 않는다) 필자의 지도 교수는 자기는 그 아이디어에 “literally shudder (문자 그대로 (너무 끔찍한 아이디어라서) 몸서리 쳐진다)”라는 말과 함께, 예의 바른 이메일 답변으로 그러나 강하게 반대했다. 필자는 “Sita Sings the Blues”라는 미국 페미니스트가 만든 라마야나의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이것도 그리 좋은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
필자가 인도에 처음 갔을 때의 쇼크는, 이 땅을 채우고 있는 이 밝고 풍성한 기운을 왜 내가 지난 7년간 읽은 책들에서는 그렇게만 그려냈을까 였다. 그리고 왜 인도인들은, 우리가 돈을 사랑하듯이,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 듯, 신을 사랑할까 였다. 물론 인도에도 우리가 아는 모든 범죄가 일어난다. 우리 눈에, 우리보다 못한 환경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많다.
여신을 Ma(어머니)라고 부르는 인도인들의 진심이 느껴질 때, 필자는 할 말이 없어진다. 그냥 그 한 마디가 많은 인도인들에게는 여신을 섬기는 이유인 것 같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통해 여신을 이해하는 것도 있겠으나, 어찌 보면, 여신을 통해 어머니라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각주]
1. Encyclopedia Brittanica. “Shakti”
2.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 pp. 11-12로부터 요약
3.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 pp. 123-124로부터 요약
4.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 pp. 124-125로부터 요약
5. “Brimming with Bhakti, Embodiments of Shakti,” p. 30
6. 여신은 페미니스트인가? p. 137로부터 요약
7. “Brimming with Bhakti, Embodiments of Shakti,” p. 25
8. “Brimming with Bhakti, Embodiments of Shakti,” pp. 25-43
9. “Brimming with Bhakti, Embodiments of Shakti,” p. 67
10. Mondays on the dark night of the moon: Himalayan foothill folktales
[참고 문헌]
Hiltebeitel, Alf, and Kathleen M. Erndl, Eds. Is the Goddess a Feminist? The Politics of South Asian Goddesses.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00.
Narayan, Kirin in collaboration with Urmila Devi Sood. Mondays on the dark night of the moon : Himalayan foothill folktales.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Narayanan, Vasudha. “Brimming with bhakti, embodiment of shakti: devotees, deities, performers, reformers, and other women of power in the Hindu tradition” Feminism and world religions. Ed. Arvind Sharma and Katherine K. Young.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9.
[그림]
대문 그림
- 제목: 략슈미와 칼리 (바소힐, 펀잡, 인도; ca. 1660-1670)
- 자료 제공: 펴블릭 도메인
3. [Attribution] unknown company in calcutta,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4. [attribution] Nina Paley,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