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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by 공개된 일기장

0. 사랑

소년은 거대한 벽 앞에 그저 서있었다. 높디 높은 벽 앞에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한참을 있다가, 위에서 풍선이 하나 내려왔다. 소년은 풍선을 잡지도, 따라가지도 않고 그저 바라만 보았다.

머리 위에 있던 풍선이 어느새 발에 내려왔다.


한참을 날아왔다. 거대한 벽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아래에는 촌스러운 소년이 있었다. 거무칙칙하고 보잘 것 없는.

지금껏 자기를 보면 손을 뻗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냥 소년은 나를 빤히 보기만 했다. 왠지 드디어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려가기로 했다. 서서히 내려가는동안에도, 소년은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소년의 눈을 지나쳐 발에 기댔다. 아무말도 하지 않아서.



01. 짝사랑

그냥 앞에만 서면, 속수무책이 되었다. 그런 관계가 있었다.

본인을 감추게 하고,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속을 알 수 없고, 멋대로 생각하게 만들고, 마음을 뒤집는.

상대방은 나를 아는데, 나는 상대방을 모른다.

애초에 불리한 게임이다. 성립할 수 없는 규칙 위의 게임.

불리한 패를 지녔지만, 게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기쁜 얼음이 되는 게임.

기쁠 순 있지만, 이길 순 없는 게임에서

얼음은 녹아내리는 것밖에 할 수 없다



02. 그날 밤, 너와 나

새벽에 아무도 없을때. 신호등도 퇴근해서 깜빡이지 않고. 가로등만 남아있을때 있잖아. 날은 적당했는데 새벽이라 살짝 스산했던 그 날 말야. 그때 도로에서 미친듯이 웃고 뛰어다니며 너가 그랬잖아. 신나지 않냐고. 음악소리는 좀 더 높여보라고 하고. 그리고 편안하게 아무도 없는 새벽 공기 베게 삼아 도로 위에 벌러덩 누운 너. 그리고 따라서 어정쩡하게 누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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