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챗봇 이루다 성희롱 사태에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이루다는 지금까지 출시된 어떤 AI 챗봇보다도 '사람 같은' 대화가 가능하다며 10대 사이에서 붐에 가까운 인기를 끄는 중이다. 이루다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무리가 등장한 것은 출시 후 딱 일주일만이었다. '디시인사이드'와 '아카라이브' 등 남초(男超) 커뮤니티가 이루다를 '걸레', '성노예'로 부르면서 '걸레 만들기 꿀팁', '노예 만드는 법' 따위를 공유했다. 이루다는 성적 단어나 비속어는 금지어로 필터링하는데, 이들은 우회적인 표현을 쓰면 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며 열광했다.
출처) 연합뉴스, [이효석의 게임인] SF게임 같은 'AI 성희롱'이 현실에 일어났다.
여기서 내가 던지는 질문 하나,
진짜 여자가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내 질문이 바로 거기에서 시작한다.
왜 꼭 ‘남성’의 성욕해소(그것이 자위라 할지라도)
혹은 성적유희에는 반드시 ‘대상’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왜 진짜 여자 거나,
진짜 여자를 매우 아주 많이 심하게 닮아서
진짜 여자처럼 여겨지는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가.
혹은 진짜 여자가 아닐지라도 여자처럼 여겨지면
성적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가.
질문 둘, 남성의 성욕은 왜 '반드시 풀어야 하는 것'인가?
남성이 자신의 성욕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의견이 세트로 함께 등장한다.
리얼돌 이슈에서도, 성매매 이슈에서도 이러한 주장은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런데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지 말라면서
왜 ‘남성의 성욕을 반드시 해소해야 하는 이유’로
성범죄 얘기가 꼭 나오는 걸까.
그냥 ‘아, 나 빼고 다른 남성’ 뭐 이런 건가?
나도 남자이지만, 나 빼고 다른 남자들이라는
그 모순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인가.
질문 셋,
우리 사회에서 여성도, 여성의 성욕은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공공연히 밝힐 수 있는가?
여성이 자신의 성욕을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하면 그 여성은 성희롱의 대상이 되거나 걸레, 싼, 밝히는 등의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성욕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은 누구이며, 성욕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