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륙의 미국과 캐나다를 이미 여행을 다녀왔다면(물론 이 방대한 나라들을 한 번 보았다고 그 나라를 온전히 보았다고 할 수 없지만) 그다음 여행지로 첫 손에 꼽을 나라가 어디일까요?
사람마다 그 선택이 다르겠지만 제 경우에는 쿠바라는 나라가 먼저 떠오릅니다. 카리브해의 강렬한 태양과 바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낭만과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좋습니다. 또한 소설가 헤밍웨이와 혁명가 게바라가 사랑했던 나라, 이들처럼 이방인을 끌어들이는 쿠바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열정적인 쿠바의 음악이 우리의 발길을 이끕니다.
물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와 아메리카 대륙에 이식된 '아프로-아메리칸'의 음악적 유산이라면 미국의 블루스 음악과 재즈, 그리고 브라질의 삼바와 이에 재즈가 결합한 보사 노바가 있고, 같은 카리브해의 음악으로 칼립소가 있습니다만, 쿠바의 음악은재즈가 이미 미국이라는 지역성을 벗어나 전 세계적인 음악으로 확장성이 확인된 현재, 아프로-아메리칸 음악 중 그 영향력으로 볼 때 미국의 블루스 음악과 견줄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룸바나 맘보, 차차차 등 쿠바의 음악은 타악기의 강렬한 리듬이 매력적인 음악으로 쿠바 혁명 이전에 미국 문화와 자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쿠바의 흑인 음악에 미국의 재즈가 혼합되어 탄생한 음악입니다.
1930~40년대에 미국의 스윙 재즈를 뒤이어 사교춤의 대명사로 이미 알려졌던 것이 쿠바의 음악이지만 과거의 음악으로 잊혔던 것을 우리의 곁으로 되살린 것은 1999년에 빔 벤더스(Wim Wenders)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원래 쿠바 혁명 이전에 번성했던 클럽으로 쿠바 음악 전성기의 상징으로 영화의 제목이 되었습니다. 영화는 저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가 쿠바 음악에 이끌려 쿠바를 방문, 쿠바 음악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혁명 이후 음악을 떠나 있었던 쿠바 음악의 거장들을 찾아내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과거 쿠바를 대표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z)는 1953년에 시작되어 1959년에 완결된 쿠바 혁명 이후, 영화가 촬영되는 1999년까지 피아노를 연주한 적 없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라이 쿠더에 의해 '쿠바의 낫 킹 콜'로 높게 평가되었던 가수 이브라힘 페레(Ibrahim Ferrer)는 쿠바 혁명 이후에 구두를 닦아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었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음악을 떠나 있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놀라운 완성도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들은 다시 되찾은 명성으로 모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가지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에서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 모두가 감동적이지만 특히 밴드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도(Omara Portuondo)와 위에서 언급한 이브라힘 페레가 듀엣으로 노래하는 '실렌시오(Silencio, 침묵)'가 주는 감동은 특별합니다.
이브라힘 페레는 2005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2019년에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서 89세의 나이로 감동적인 노래를 들려주었던 오마라 포르투온도 또한 고령으로 더 이상 그녀의 노래를 접하기 어렵게 된 마당에 이 노래에서 들려준 두 사람의 감동적인 콤비네이션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영화의 OST에서는 이 노래가 빠져있어 항상 아쉬웠지만 이후에 나온 카네기홀 실황 음반에 수록되어 영화에서 받았던 감동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스튜디오 녹음 장면과 카네기홀에서 이 노래를 실황으로 부르는 두 사람의 몰입과 아름다운 가사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