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이 평안하다

by 밤과 꿈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이 평안하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L. M. Montgomery) 여사가 쓴 성장 소설 '빨강 머리 앤'(원제는 'Anne of Green Gables')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원래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피파의 노래(Pipa's Song)'의 마지막 구절이기도 하다.


시절은 봄

그리고 아침

오전 7시에

비탈엔 이슬이 진주처럼 맺히고

종달새는 하늘 높이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서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이 평안하다


앤의 영원한 지지자였던 매슈 커스버트가 죽고 홀로 남은 마릴라의 건강이 악화되어 시력을 잃어 간다. 이에 앤은 꿈에 그리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마릴라의 곁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마침 길버트의 양보로 지역 교사로 일하게 되어 난마(亂麻)와 같이 얽혀있던 문제가 해결되는데 이때 앤이 감격에 차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말이다.


이처럼 죽음은 많은 것의 변화를 가져온다. 죽음이 삶의 반대되는 개념이니만큼 한 사람의 죽음은 힘든 삶을 끝낸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당사자와 연관된 사람들의 삶 또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죽음을 삶의 종말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하느냐 하는 인식론적인 문제가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부활'에 있다. 부활 신앙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활에는 죽음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죽음이 있기에 부활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에 있어서 죽음은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구약성경은 죽음을 원죄에 대하여 치러야만 할 대가로 기록하고 있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원죄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니 죽음은 구원에 이르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완전한 종말이 아니라 이생에서의 삶을 끝내고 창조주의 곁으로 옮겨 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육신의 가족에게는 망자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관계가 재설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빨강 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목사의 아내였기에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빨강 머리 앤'에서 한 사람의 죽음과 이로 인한 남은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창조주, 곧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장모님께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열흘간이 힘드셨지만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신 지 이틀 만에 돌아가신 것이라 자식들의 입장에서는 황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입원하실 때에는 최소한 열흘은 자식들의 곁에 머무실 것으로 생각했지만 급성 신부전으로 갑작스럽게 이생에서의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서둘러 떠나간 장모님의 임종이 가족으로서는 슬픈 일이지만 폐암 환자가 임종 직전에 겪게 되는 극심한 고통 없이 하나님의 곁으로 삶을 옮겨가신 것에 큰 위로를 받게 된다.

아내는 아직 슬픔에 빠져있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합당하게 이루어졌다는 믿음으로 슬픔을 극복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다른 공간에 있어도 장모님의 존재는 새로운 의미로 자식들과 함께 하리라 믿어본다. 육신의 질고로 떠나가신 장모님께서 남겨진 자식들의 마음에 다시 임하시라 믿는 것이다.

나는 부활신앙과 관련,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죽음과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현실의 복을 구할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의 영원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 떠나가는 생명의 길이 곧 우리가 뒤따를 길임을 인식하고 죽음 너머의 영원이 우리가 도달할 피안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니 세상이 평안하다."는 시처럼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의 섭리를 축복으로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인간사의 모든 일이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있으니 삶과 죽음이 모두 장엄하고 세상은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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