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크리모사(Lacrimosa)

by 밤과 꿈

부슬비가 처연하게 내리는 이른 아침

장의차는 한가득 슬픔을 싣고

썩어질 육신의 안식처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무서웠던 긴 슬픔의 행렬에

따뜻한 연대를 느끼는 오늘, 애틋한 마음으로

차창을 타고 흐르는 슬픔들을 떠나보냅니다


눈물과 함께 생사의 경계에 마주설 사람들

흥건한 슬픔 모두를 매장하지는 못할 사람들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도 서로 그리울 그들

한동안 질펀한 눈물의 시간에 머물겠지만

눈물까지 메말라 비로소 슬픔이 탈혼 할 때

떠나간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어울려 풍경으로 태어나겠지요


하늘은 그지없이 푸르고

호랑나비 한 마리가 한가롭게 유영하는

양지바른 무덤가에서는

모락모락 추억이 피어올라

햇살을 받고 빛나는 풍경입니다

슬픔이 따뜻한 위로가 되는 시간입니다


--------------------------------


NOTE


어릴 때 검은 띠를 두른 장의차는 무서움을 유발하는 존재였다. 그 무서움이라는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가까이 친인척을 통해서도 죽음의 선험조차 없었던 나이인데도 어렴풋이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있었나 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장의차를 만나는 것을 재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했었던 것 같다. 장의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가슴에 단 명찰을 꼭 가리고 있었으니 '재수 옴 붙다'는 식의 미신의 감정이 많이 작용했었다.

어쨌든 장의차를 본다는 것은 불쾌한 경험이었던 것인데 죽음이라는 것이 생명을 다한다는 뜻이니만큼 살아있는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하게 된다. 죽음이 마냥 무서운 것도,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생과 사로 나누어지는 이별은 슬픈 일이지만 이 슬픔을 통해 우리는 새롭게 정화되고 망자와의 관계도 또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적어도 내세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죽음의 의미는 보다 가깝고 슬픔을 넘어서는 차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다 문득 시상을 떠올린다.


# 라크리모사(Lacrimosa): 눈물의 날. 레퀴엠(진혼곡), 혹은 레퀴엠 미사(위령 미사) 중에 포함되는 곡.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가 특히 유명하다.



https://youtu.be/yR6bKWvvltU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