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라는 존재는 우리 가요사에 있어서 분명 남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민기가 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는청바지와 통기타로 대변되는, 팝의 한 장르로서의포크음악이 우리 가요에 소개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초 가요에 도입된 포크 음악은 외국 곡의 번안이 주를 이루어, 조금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포크라는 장르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흉내를 내고 있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때 나타난 김민기의 노래는 한마디로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과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시적인 가사가 아름다운, 그리고 전통적인 선율에 토속적인 가사가 어울려진 노래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우리 가요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고 하겠습니다.
음악사회학적 연구를 해왔던 서울대 음대의 서우석 교수는 김민기의 노래에 대하여 일반 가요와 분리, 다른 차원의 노래로 분류하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이건용 교수는 "그(김민기)는 우리나라의 노래 상황을, 그리고 이를 거부하고 새로운 들음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 노래를 만들었다"라고 김민기와 그의 노래가 가진 가치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었습니다. 이는 물론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나 소리굿 '아구' 등 마당극 형식의 노래 실험과 이후 지금까지 극단 '학전'을 통해 지속되는 활동까지도 염두에 둔 평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김민기의 노래는 클래식 음악 전문가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김민기의 노래는 한 장의 앨범을 LP로 세상에 선보인 이후 대부분의 노래가 잊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출반된 LP에 수록된 노래들마저 금지곡이 되어 김민기는 기피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의 노래는 모두가 알다시피 무대가 아닌,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제 기능을 다하면서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김민기의 노래가 지닌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서정성과 더불어 파급력이 강한 도발성이 그의 노래에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나름 생각합니다.
오래 들을 수 없었던 김민기의 주옥같은 노래들은 1993년 4장의 앨범으로 기획, 김민기의 그윽한 저음으로 녹음되어 CD와 LP로 동시에 출반, 비로소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1980년대 초에 서울대 노래 동아리인 '메아리'의 교내 공연 실황 테이프를 통해 김민기의 노래가 가진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었습니다. 전통 가락에 맞춰 쓴 '소금땀흘리 흘리'는 학교 앞 단골 주점에서 막걸리를 마실 때 젓가락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특히 좋아했던 노래는 '밤바다'라는 노래로 1993년에 녹음된 음반에는 제목이 '바다'로 표기, 음반을 직접 듣기 이전에는 같은 노래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한 가지 추억으로 더욱 기억에 남는 노래입니다. 1980년대의 어느 무더운 8월, 한 달간 남해의 향공장에서 친구와 함께 막노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향을 만드는 일이 완전 막노동이라서 8월의 뙤약볕에서 감태나무를 절단하고, 이를 넓은 마당에 펴서 말리고 거두는 단순한 일이지만 하루 종일 하는 삽질이 힘에 버겁기도 하거니와 감태나무의 끈끈한 액이 온몸에 범벅이 되어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된 하루가 저물면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하는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남해에서는 상주해수욕장이 잘 알려졌지만 사람이 붐벼 시끄러웠고, 고개 하나를 넘어 있는 송정해수욕장은 호젓해서(지금은 이곳도 사람의 발길이 잦아졌겠지요) 자주 갔었습니다.
그곳 백사장에 앉아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불렀던 노래가 바로 '바다'였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내 마음은 복잡해서 그냥 외로웠고, 젊음이 서러웠고, 시간이 슬펐습니다.
아마도 젊은 날의 나는 삶의 방향을 잃고 어두운 밤바다와 같은 심연 속에서 오래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김민기가 1993년에 노래한 음반은 김민기의 출반 음반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인기 있는 수집 대상으로 중고 LP의 거래 가격이 장당 25만 원에 이를 만큼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이들 음반에서 들려주는 김민기의 저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민기가 처음 노래했던 시절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뒤의 더욱 짙어진 저음이 오히려 노래의 탄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노래의 경우 오히려 노래 동아리 '메아리'의 노래가 순수하게 가사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유튜브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아쉬움은 있지만 젊은 날에 듣던 감흥을 되살리게 되는 반가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