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남겨진 자리

-익명(匿名)의 너에게 부치는 편지(2)

by 밤과 꿈

오늘을 마지막으로 강원도를 떠나.

이곳으로 내려온 날, 작년에 장모님과 함께 했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어.

메뉴도 똑같은 모듬생선구이였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무심코 선택한 식당인데 어딘가 낯이 익다 했지.

아마도 무의식 중에서도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었나 보다.

뒤늦게 바라보는 식당 주변의 모습이 정답다.

일 년 전 장모님과 함께 왔던 곳이기에.

그렇게 낯선 자리 하나가 새로운 의미가 된다.


어제까지 바다에 머물다 오늘은 잠시 설악산을 눈에 담고 일상으로 돌아갈까 해.

작년에는 장모님의 건강 때문에 설악산은 생각도 못했었지.

그런데 지금 아내는 고작 한 시간을 걸어서라도 설악산의 흙을 밟고야 말 기세다.

새 신발 때문에 걸음이 불편한 난 안중에도 없는 듯.

지병으로 류머티즘이 있는 아내는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별일이다 싶네.


그래서 지난밤에 곰곰 생각해 보았지.

아내가 이렇게 설악산에 집착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어쩌면 아내는 설악산을 마지막 일정으로 해서 장모님과의 이별이라는 슬픔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만은 없는 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그런 것을 잘 못하거든.

미처 몰랐지만......

아내에게는 이번 휴가가 슬픔을 내려놓기 위한 의미가 되지 않았을까......


떠나간 자리는 곧 떠나보낸 자리.

마찬가지로 떠나보낸 자리는 떠나간 자리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그리고 추억으로 남겨지는 자리......

아내에게는 강원도가 그런 자리가 아닐까.

이처럼 8월이 가면, 아니, 우리가 8월을 떠나보낸 후......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가을이 오겠지.

그땐 우리 만나서 차 한 잔 나누며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그때까지 안녕.












# 함께 들으면 좋을 음악: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중 3~4악장

https://youtu.be/m8MguCPezDc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름이 떠나가는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