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탄생을 알린 관능의 언어

- 보들레르의 '악의 꽃' 마티스 에디션을 읽고

by 밤과 꿈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의 유명한 시집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을 처음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물론 어려워서 이해가 힘들었다. 번역으로는 프랑스어가 지닌 뉘앙스를 살리기 힘들다는 점도 있었지만, 시에 표현된 서구인의 감정과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자고 우리말로 쓰인 우리 시가 아니라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에 꽂혀 이해하기도 힘든 시집을 들고 다녔는지. 아마도 겉멋이 잔뜩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나마 말라르메와 베를렌느, 랭보의 시는 읽을 만했지만 보들레르와 발레리의 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학교에 와서는 김수영 시인과 신동엽 시인의 시를 시작으로 반시와 오월시 동인 등의 민중시 계열의 시를 즐겨 읽었기 때문에 오래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집을 펼칠 일이 없었다. 따라서 문고판으로 구입한 보들레르의 '악의 꽃'도 책꽂이의 구석에서 천대받다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2018년에 새로운 편집의 '악의 꽃'이 국내에 출판되어 구입을 했었다. 새로운 '악의 꽃'은 원 시집에 수록된 100 편이 넘는 시를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33 편의 시를 고르고, 자신의 드로잉 작품을 함께 수록하여 엮은 판본이다. 보들레르의 시에 관심이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마티스의 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과 함께 사 두었던 이 시집을 최근에서야 조금씩 읽고 있다.


상징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샤를 보들레르는 사제였다가 환속한 아버지 조셉 보들레르와 어머니 카롤린 뒤파이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비록 사제였었지만 문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고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미술 평론을 겸했던 보들레르의 재능과 안목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연로한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와 재혼한 의붓아버지 오픽은 직업 군인으로 권위적인 성격으로 보들레르의 자유분방한 성격과는 어울리기 힘든 것이었다. 이에 보들레르는 18세 때 다니던 중등학교를 문란한 생활을 이유로 퇴학당하게 된다. 이후 자격시험을 거쳐 파리 법과대학으로 진학하게 되지만 학업보다는 문학에 관심을 두면서 방탕한 생활로 일관하게 된다. 성인이 되어 친부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지만 방탕한 생활로 탕진, 금치산 선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보들레르의 시에 있어 시인의 성장기와 젊은 시절의 모습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기에 간략하게 이를 살펴보았다. 실제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은 시인의 방종한 생활 경험이 투영, 퇴폐적이고도 우울한 정서가 지배하고 있다. 출판 당시에도 이 시집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고, 6편의 시에 대한, 음란을 이유로 한 법원의 삭제 선고를 비롯한 많은 법정 분쟁을 야기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집 '악의 꽃'이 가진 독특한 주제와 운율, 새로운 분위기는 19세기의 낭만주의의 전통을 벗어난 것(문학에 있어 상징주의는 낭만주의에서 파생되었지만 크게 낭만주의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으로 시인의 시가 가진 이런 특성으로 해서 보들레르를 현대시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보들레르 시집의 제목 '악의 꽃'은 그의 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악의 꽃들'로 번역되는 'Les Fleurs du Mal'에서 'Mal'은 라틴어 'malum'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통이나 불행의 원인, 번민 혹은 괴로움 등의 의미와 함께 도덕적인 악, 악마 또는 타락한 천사를 의미한다."라는 시집 속 작품 해설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시집 '악의 꽃'은 보들레르가 46년의 짧은 생애 동안 겪었던 삶의 고뇌와 좌절, 육신의 질병이 주는 고통 등이 시로 승화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고뇌에 찬 삶의 조건을 안고 관능과 쾌락에 몸을 내던진 보들레르는 건강을 잃고 방탕의 대가로 얻은 매독에 의해 생명을 잃은 것이었다.

시집 속의 시 가운데 한 편, 보들레르의 연인이었던 흑인 혼혈 잔느 뒤발을 향한 것임에 틀림없을 '여행으로의 초대(L'invitation au voyage)' 전문을 소개하면서 참고로 이를 가사로 해서 곡을 붙인 앙리 뒤파르크(Henri Duparc)의 프랑스 가곡(melodie)을 함께 수록한다.

내 소중한, 내 사랑아,
꿈꾸어보아요.
그곳에서 함께 사는 달콤함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죽는 날까지 또 사랑할 테요,
그대 닮은 그곳에서!
흐린 하늘의
촉촉한 태양이
내 마음 매혹시키네,
못 믿을 만큼
신비로운 그대 눈동자에
스치듯 반짝이는 눈물로.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세월의 광택으로
빛나는 가구들로
우리 침실을 장식하리라.
진귀한 꽃들
그 향기와 어우러지는
은은한 호박향
호화로운 천장
깊숙한 거울
동방의 찬란함
그 모든 것이 들려주리라,
내 영혼에 은밀하게
정겨운 그대의 고향 언어를.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저 운하 위에
잠든 배들을 보아요.
방랑벽에 젖은 채로
그대 소망 아주 작은 것까지
채워주려
세상 끝에서 왔답니다.
- 저무는 저 태양이
물들이고 있어요, 저 벌판과
운하와 도시 곳곳을,
보랏빛과 금빛으로.
이제 세상은 잠들 거예요,
따뜻한 햇빛 속에서.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https://youtu.be/Ck9geoxCG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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