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감성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레트로'는 회고, 회상의 의미를 가진 영어 retrospect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일종의 복고(復古) 취향을 반영한 말이다.그리고 이와 같은 레트로 감성은 우리의 일상 군데군데에 스며들어 있어 전혀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레트로를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흥미로운 유행의 차원에서 경험하고자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말하자면 유행에 휩쓸려 이해 없이 복고주의 지향 현상인 레트로를 소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언급한 모방 유전자 밈(meme)에 의한, 남의 것을 모방하고자 하는 심리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원래 레트로는 1970년대 초반 패션에서 처음 등장했다. 과거의 패션을 현대의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레트로 룩이 하나의 패션 장르를 형성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레트로 룩은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인식하는 일종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된다.
레트로 선풍을 이끌고 있는 또 하나의 장르가 음악이다. 대중음악의 경우 음악만큼이나 유행에 민감한 장르가 따로 없다. 따라서 과거의 음악이 현재에 리바이블되지않은 이상 오래된 음악이 다시 유행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들어 간편하게 복제 가능한 음원이 음악 소비의 주요 수단이 되면서 보다 손쉽게 과거의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오래된 음악을 OST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레트로 감성의 선풍적인 유행은 혁명이라고 부를 만큼 가파르게 발전을 거듭하는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 대한 반동으로 보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신기술을 한 개인이 따라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보다 느긋했던 과거로 눈을 돌리게 되어 레트로 감성을 불러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술 문명에 대한 소외가 레트로 감성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레트로 감성의 기저에 사회병리학적인 측면이 있는 만큼 레트로라는 사회 현상을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내려가는 문화로 인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레트로 감성과는 다른 것이지만 나는 지나간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절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소설가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소설은 박태원이 1936년에 '조광'에 연재한 소설로 일제강점기의 서울 청계천변에서 삶을 영위하던 기층 민중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박태원이라는 소설가가 한국전쟁의 시기에 월북한 작가였다는 사실에 그의 대표작인 이 소설에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경험할 수 없는 지난 시간의 모습을 알아가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처럼 오래된 소설은 예스런 문장과 정서 등 현재와 맞지 않은 점도 있지만 과거의 한 시대를 알아가는 의미가 크다. '천변풍경'이라는 소설을 통해서는 지금처럼 공원화된 , 그리고 오랫동안 복개천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숨어있었던 청계천보다는 사람의 생기가 넘치는 청계천의 모습이 초라하지만 따뜻하게 다가온다.이것도 문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위로와 감동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지난날의 문학 작품을 찾아 읽는 이유의 하나라고 하겠다.
또한 이상하게도 마음이 이끌리는 옛 가요가 한 곡 있다.성재희라고 저음이 매력적이었던 가수가 부른 '보슬비 오는 거리'라는 노래다. 뛰어난 트럼펫 주자이며 밴드 마스터이기도 했던 김인배 씨가 1965년에 작곡한 노래로 이 노래가가진 정서에서 1960년대라는 시대의 면면을 읽게 된다. 아마도 이 시기에 내가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 1960년대의 누추한 풍경이 드리워져 있기에 이 노래가 친숙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개인적인 기호나 호감이 작동하지 않더라도 나는 오래된 대중음악이나 영화를 볼 때 그 속에 노출되어 있는 시대의 모습을 읽어내기 위해 관심을 집중한다. 지나간 시간이 역사가 될 때 역사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지난날의 일상도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레트로 감성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으로 지난 시간을 이해하는 마음의 다리로 이해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