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가는 앞마당 감나무를
쫓기듯 휘감고 올라가는 구렁이 한 마리,
그 서늘한 두 눈의 응시와
대청마루에서 햇살 바라기 하던 소년
의 놀란 시선이 마주할 때
그 사이를 흐르는 적요가 장구(長久)하고
탄력을 잃어가는 가을 햇살이
느긋하게 내려앉는 이면 도로에
죽어 짓이겨진 비둘기 한 마리,
햇살을 쓸고 가는 바람을 따라
서서히 육탈(肉脫) 하는 사체도
감지 못하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립게 가을 햇살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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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적요는 엄숙한 생의 국면이니
우리 삶과 죽음의 사이가 언제나 적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