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 요한일서에 기록된 말씀이다.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것처럼 그 어떤 것보다 앞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인 사랑이 계명의 차원을 넘어서는, 궁극적인 가치로 다가오는 말씀이다.
그러나 지난 교회의 역사와 현실의 교회에서최고선인 사랑이 현현(顯現)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던질 때 우리는 명백하게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교회사를 볼 때 우리는 어렵지 않게 분열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초기 교회 성립 당시부터 교리 상의 차이로 많은 교회 분열이 있었지만 큰 줄기만 보더라도 우선 1054년에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분열되었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면죄부를 가톨릭 교회의 교리로 인정한 것에 반발한 마르틴 루터가 1517년 95개 조에 달하는 반박문을 쓴 것으로 촉발된 프로테스탄트의분열이 있었다. 이때 30년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신, 구 교회 간의 종교전쟁이 뒤따라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암울한 흑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이처럼 가톨릭 교회와 동방정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티즘에 기초한 개신교가 분열된 이후 서로 다른 교리를 확립하면서 상이한 길을 걸어왔지만 이들 종교를 기독교라고 함께 부를 수 있는 까닭은 공히 예수를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고,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을 말하는, 같은 시작을 가진 두 종교가 3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서로를 죽이는 전쟁이라는 행위는 사랑을 말하는 교회가 할 짓이 아니다. 당시의 교회에는 사랑의 마음은 없고 증오만 가득했다는 뜻이다. 이는 교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교회의 분열이 아닌, 부패한 교회의 개혁을 바랐던 마르틴 루터를 교황이 파문함으로써 교회가 분열되었던 것처럼, 30년전쟁 또한 가톨릭 교리를 강요하는 로마에 반발한 독일 귀족들을 탄압하면서 발발했기에 그 사유의 귀책에서 개신교가 가톨릭 교회에 비해 좀 더 자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에 개신교의 허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것은 1525년의 독일 농민전쟁 당시에 마르틴 루터가 보여준 이중적인 태도를 예로 들 수 있다.10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끝난 농민전쟁은 표면적으로는 독일 귀족계급의 경제적 지배에 항거한 농민계급의 봉기가 그 원인이었지만 이면에는 개신교 내 교파적 갈등의 흔적 또한 있었다.토마스 뮌처와 같은 급진적 종교 지도자들이 농민의 봉기를 지지했던 반면, 마르틴 루터는 '살인마 도둑떼 농민들에 맞서'라는 제목의 논고를 통해 농민을 개에 비유하는 등 원색적인 언사로 독일의 여러 선제후들에게 농민 봉기의 잔혹한 진압을 독려했다. 농민 봉기가 진압된 후 마르틴 루터는 봉기의 진압이 지나치게 잔혹했다고 귀족들을 비판, 모호하고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교회는 언제나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교회사에서는 이와 상반된 역사적 사실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1054년에 분열되었던 동방 정교회와 화해하고, 개신교회를 형제 교회로 인정하는 등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교회는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천명함으로써폐쇄적이고도 보수적인 이미지를 일신했다.
나는 평소에 4개의 개신교 TV 방송 채널뿐만 아니라 가톨릭 쪽 평화방송 TV 방송의 성서 강해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는데 실제 개신교를 지칭할 때 개신교 형제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교단들이 가톨릭 교회를 대하는 자세는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부정적이다. 물론 제사의 허용과 같은 일부 교리적 차이가 개신교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함께 하고 있기에 보다 전향적인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을 포함하여 기독교의 보수화 경향이 심화되고 있는 현상을 주목한다.
지난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극심했을 때 개신교계는 '도시산업선교회'를 통해 노동자의 권익과 도시 빈민의 인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이를 조장하는 정치권력에 저항했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가톨릭농민회'를 통해 산업화의 여파로 공동화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권익에 대한 관심을 지속했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전통이 현재는 많이 약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로 사회적 갈등이 극명하게 표출되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그러나 갈등이 내재화되면서 고질적인 것이 되어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정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단순한 구제가 아닌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런 사회적 관심이 개인 영혼의 구원에 가려져서는 안 되지않을까.
우리 개신교의 분열상도 낯 뜨거운 모습이다. 교회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개교회주의가 다양한 교단을 낳게 된 것이겠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교회 분열이 극심한 실정이다.우리나라 개신교의 주요 교파인 장로교는 300개가 넘는 교단으로 분열되어 있을 정도이다. 교리의 차이가 분열의 원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적인 이해에 따른 분열이라는 점이 아픈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열은 교단 이기주의와 개교회중심주의에 의해 교회의 일치를 힘들게 하고 있다. 심지어 자기 교단과는 교리의 차이가 있다고 해서 다른 교단을 이단을 대하듯이 경원시하는 교단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가 사회로부터 유리되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지금 우리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교회가 일치를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가 분열과 고립을 말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바꾸어 말하자면 "교회에 사랑이 머물고 있는가, 교회에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