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화’에 감추어진 폭력적 진실과 권력

- 토니 모리슨의 ‘타인의 기원’을 읽고

by 밤과 꿈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은 그녀의 대표작인 ‘빌러비드’와 ‘재즈’ 등의 소설에서 인종 문제와 흑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깊이 천착해왔다. 그녀 자신이 흑인인 작가로서 그녀의 내면이 요구하는 당연한 창작의 주제라고 할 것이다. 최근 토니 모리슨의 작품 세계를 그 기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책이 국내에서 출간되었다.

토니 모리슨이 사망하기 2년 전인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타인의 기원(The Origin Of Others)’은 미국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인종차별이라는 정체성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2016년에 토니 모리슨이 하버드대학교에서 했던 강연의 내용을 기초로 정리하여 출간되었다. 비록 얇은 책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이 책에서 토니 모리슨은 미국에서의 인종 갈등이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자 하는 타자화’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고, 동일한 인간을 타자화함으로써 비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거나 인종 문제를 낭만화시키는 예를 지목한다.


먼저 토니 모리슨은 인종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미국인, 엄격히 말해서 ‘“백인들은 인종차별이라는 현재 진행형의 범죄를 지우기 위해 ‘인종’이라는 실체가 없는 개념을 이용”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노예를 자신과 전혀 다른 종으로 굳이 취급해야겠다는 필요성은, 아마도 자기 자아가 지극히 정상임을 확인하려는 절박한 시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과 같은 인간을 사유화해서 자기 목적에 이용하는 것에 따르는 윤리적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종이라는 개념을 도입, 그 차이를 믿었다는 것이다.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비슷한 방식으로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우리 부족 사람과 그 밖의 사람을 구분지은 뒤 상대를 적으로, 즉 취약하고 결핍이 있으며 통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힘으로 다른 부족을 정복하고 강성한 부족 국가를 형성했다. 이때 노예제도가 생겼다는 것은 역사적인 정설이다.

지금까지도 ‘타자성’을 보여주는 가치로는 계급, 빈부의 차이, 젠더가 있으며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피부색이 있다. 토니 모리슨은 이에 대하여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모리슨의 증조할머니가 모리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모리슨 자매를 지팡이로 가리키며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섞였구먼, 이 애들”이라고.

토니 모리슨은 이 일을 자신이 ‘타자화’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는 증조할머니의 말을 한사코 부정했다는 기억도 함께.

흑인의 입장에서도 혼혈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었나 보다. 노예제도가 합법적이었을 때(물론 그 이후에 사정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흑백의 혼혈은 흑인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소유주인 백인에 의한 거부할 수 없는 강간의 결과였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피부색의 옅음은 친가이든 외가이든 선조 때의 피섞임의 결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색은 어느 대상을 타자화하는 좋은 수단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시작된 미군의 진주는 혼혈아라는 달갑지 않은 현실을 맞이하게 했다. 전쟁이라는 궁핍한 상황에서 모두가 힘겹게 생존을 이어온 가운데에서도 이른바 양공주와 튀기는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한편, 역사적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백인의 피부색에 의한 타자화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노예제도가 사라진 20세기에도 흑백의 차별은 ‘한 방울의 법칙’이 제도로서 시행되고 있었다. ‘한 방울의 법칙’이란 조상 중에 흑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즉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법적으로도 흑인으로 간주하는 법이었다. 법적으로 흑인이라는 사실은 1950년까지 지속된 흑백 차별법인 짐 크로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노예제도가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백인들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들은 흑인을 ‘타자화’함으로써 도덕적 판단에 무관심할 수 있었다.


인종은 권력의 결과물이다. 타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권력을 얻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인종은 권력의 결과물이다”라는 말은 브루스 바움이 ‘코카서스 인종의 융성과 몰락’이라는 책에서 코카서스 인종이라는 관념과 함께 나치즘의 핵심이었던 아리아 인종의 허구성을 언급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노예 소유주들의 노예에 대한 야만적인 폭력에 대하여 토니 모리슨은 마치 “나는 괴물이 아니야! 괴물이 아니라고! 내가 나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힘없는 것들을 괴롭히는 것뿐이야”라고 노예 소유주들이 항변하는 듯하다고 표현한다. 말하자면 토니 모리슨은 여러 고증을 통하여 흑인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잘못에 대한 체벌이 아니라 대부분 이유 없는 사디즘, 즉 가학적 폭력성의 발로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권력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치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학살은 권력에 의한, 얼마나 거대한 폭력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본래의 취지에서 잠시 벗어나 토니 모리슨도 지금도 모든 사람들에게 도사리고 있는 소유와 권력의 관계에 대하여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려 언급한다. “소유로서의 사랑을 경계”하라고.

인간은 타자를 인식하는 한 “타자를 소유하고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과 달리 개성이 강한 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나 자신은 꼭 지녀야 한다고 고집하는 그 개인적 특성을 남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본성이 있다고 언급한다.


한편, 토니 모리슨은 미국 문학에서 흑백의 인종문제를 얼마나 낭만적인 것으로 왜곡하고 있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에는 강제로 정의 내려진 흑인성이라는 개념이 도사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나아가서 자신의 문학에 대하여 “나는 인종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극화하기 위해 시종일관 애썼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종이라는 구성물이 얼마나 유동적이고 철저히 무의미한 개념인지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토니 모리슨은 20세기에 들어서 흑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면서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폭력적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례를 들어 언급, “어디에서나 ‘바깥’은 존재한다”는 말로 상황을 압축하여 설명하고 있다.


미움받은 만큼 더 많이 사랑하라

끝으로 토니 모리슨은 자신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빌러비드’의 소재가 된 마가렛 가너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노예제도가 엄연히 존재했던 19세기 중엽에 발생한 살인 사건으로 마가렛 가너는 켄터키 주에서 노예로 살다 가족과 함께 노예제도가 폐지된 오하이오 주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자신들을 쫓아온 경찰과 노예 사냥꾼들이 은신처를 급습할 때, 두 아이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쳐 죽이고, 셋째 아이는 칼로 목을 그어 죽였다. 마지막 한 아이는 미처 죽이지 못한 채 붙들리게 된 사건이었다.

이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른 마가렛 가너를 구치소에서 직접 만난 배셋 목사는 마가렛 가너가 지극히 이성적으로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대화는 자신의 고통스럽고 부당한 대우로 가득한 노예 생활과 그와 같은 노예의 신분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기술했다.

그리고 배셋 목사는 “사실을 전해 듣고 여인의 얼굴에 드러난 괴로움을 목격한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지적인 존재를 향해 휘두르는 무책임한 권력은 얼마나 끔찍한가! 여인은 자신이 죽인 아이가 모든 고난과 슬픔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말했는데, 여인이 그때 드러낸 만족감은 핏줄 속의 피를 얼어붙게 할 지경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사건의 다소 충격적인 결말은 미국이라는 백인 사회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가렛 가너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노예 어머니에게는 자식을 죽인 데에 대한 어떤 법적 책임도 없다는 판결이었다.

마가렛 가너는 누군가의 재산이었고, 가너의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가너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법원은 마가렛 가너를 어머니 역할을 비롯한 여러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인간이 아니라 매매될 수 있는 가축과 같은 존재로 최종 판단한 것이었다. 이후 마가렛 가너는 장티푸스로 죽을 때까지 노예의 삶을 살았다.

여기서 토니 모리슨의 소설 ‘빌러비드’에 대하여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상상력과 시적인 문장의 이 소설이 말하는 바가 ‘사랑’이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보다 처절하고 아픈 사랑이다.


토니 모리슨의 ‘타인의 기원’을 읽고, 모리슨이 말하는 타자성 혹은 타자화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정치 현실을 설명하는 말로 떠오르는 것으로 팬덤 정치와 내로남불이 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는 대중의 모습에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탄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바탕에 상대방에 대한 폭력성이 함께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도 일독할 만한 가치를 가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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