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기억의 풍경을 만들다

by 밤과 꿈

가을이 떠나기 전에 가을의 모습을 눈에 담고자 주일 예배 후 차를 몰고 양수리로 향했다. 사람의 생각이 엇비슷한지 가는 길의 정체가 심했다. 그래도 목적지로 가는 내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벌써 만추의 자태를 뽐내고 있는 가을의 정취와 오늘따라 유달리 푸른 한강의 물빛이 심신의 피로를 씻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강변에 바로 인접한 카페에서 빵과 커피로 시장기를 면한 후 강변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 보니 이곳의 기후는 이미 겨울을 향해 잰걸음을 내딛고 있는 듯싶다. 산책길의 나무들은 나뭇잎이 이미 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를 부끄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강변에서 바람을 따라 하늘거리며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갈대의 무리가 깊어가는 가을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환하게 눈에 들어오는 자작나무가 반갑다. 자작나무가 한대 수종이라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자작나무를 노래한 시가 적지 않아 의외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 숲에 대한 인상이 워낙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 자작나무는 우선 스피커 제작에 가장 좋은 목재라는 재미없는 사실과 L.M.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 머리 앤', 그리고 자작나무를 많이 그리는 이수동 화백의 회화가 떠오른다.

그리고 자작나무를 소재로 한 시들과 이수동 화백의 그림 모두가 자작나무에 대한 강렬한 인상의 기억이 창작의 동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작나무는 이수동 화백이나 여러 시인들의 기억 속에 온전한 풍경으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월계수라는 나무가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는 나무다.

코흘리개도 못 되는 꼬맹이 시절의 1960년대에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은 꽤나 근사했던 기억이다. 사랑채까지 있어 남에게 세를 놓았던 한옥에는 소파를 갖춘 응접실이 있었고, 작은 연못이 있었던 마당과 화분이 가득한 온실까지 있었던 집이었다. 이 모두가 아버지의 취향에 따른 것이었지만 공무원으로서 남의 사업에 자금을 투자, 사기를 당하면서부터 가세가 기울어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무렵에 집을 줄여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때 살던 집에 있었던 나무 중에서도 아버지께서 가장 아끼시던 월계수를 이사 간 집 뜰에 옮겨 심었던 것인데 이 월계수는 이후 우리 집안의 흥망성쇠를 기억하고 성장기의 기억들을 한 곳에 결집시키는 풍경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베개의 속으로 사용했던 월계수 잎의 좋은 향 또한 내 기억 속 풍경의 배경이 되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꼬맹이 때 살았던 큰 집에는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어느 날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털고 천천히 감나무 위로 올라갔단다. 그 모습을 본 작은 형이 구렁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고 액땜으로 손가락에 된장을 바르는 등 난리법석을 떤 일이 있었다고 한다. 구렁이라니까 윤흥길의 중편 소설 '장마'가 생각난다. 갑자기 기억은 토속신앙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시골에서는 구렁이를 집안의 터줏대감으로 섬겼단다. 그리고 이 터줏대감이 집을 떠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그래서 아버지께서 사기를 당하고 가세가 기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사를 간 작은 집 장독대에 일 평방미터 가량의 용도를 모르는 웅덩이가 있었단다. 그 웅덩이를 메웠다. 원래 우물을 함부로 메우는 것이 아니란다. 우물이 아니고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그 집에서 가세가 더 기울었던 것일까.


이처럼 다른 가족에게 들었던 사실이 내 기억에 더하여 기억 속 어린 시절의 풍경이 풍성해졌다.

과거의 그 기억들이 반드시 유쾌한 것이 아닐지라도 아련한 추억의 풍경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의 중심에는 월계수라는 나무와 매일 베개에서 맡던 월계수의 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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