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견디며 배우는 삶의 지혜

by 밤과 꿈

‘윈터링(wintering)’, 영어로 써 막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를 ‘겨울나기’ 혹은 ‘월동’이라는 친숙한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케서린 메이가 쓴 에세이집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가 다루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케서린 메리는 이 책에서 윈터링을 설명하면서 겨울에 대하여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라고 말한다.

휴한기, 좋은 말이지만 나는 여전히 휴한기라는 표현보다는 소멸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소멸이라는 말이 주는 긴장이 사유에 깊이를 더하고 지경을 넓힌다. 늦가을의 단풍도 소멸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할 때, 추색(秋色)이 절절하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 책을 썼을 때 캐서린 메이는 실직과 남편의 병, 아들의 문제 등 어려운 상황을 복합적으로 겪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인생의 겨울을 9월의 인디언 서머로부터 이듬해 3월에 이르는 시기에 추운 아이슬란드에서 지내면서 견디고 터득한 삶의 지혜를 담담한 필치로 서술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생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려운 상황을 견디며 극복하는 지혜를 말하고 있지만, 추운 겨울에서 살아가며 자연에 감응하는 모습 또한 이 책은 기술하고 있어 복합적으로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캐서린 메이는 이 책에서 말한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어디쯤에선가 넘어지게 되고, 겨울은 그렇게 조용히 삶 속으로 들어온다”라고. 나 또한 인생의 겨울을 겪었기 때문에 이 책을 잃었을 때 캐서린 메이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누구나 장년의 나이가 되면 인생에 있어 겨울이라고 부를 만한 시기를 한 번쯤은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장년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여러 번 인생의 겨울을 경험했으리라는 것이 타당한 추론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중 하나의 곤란이 극심해서 다른 곤란은 큰 문제로 기억되지 않을 따름이다.

대단하지 않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곤란에 직면했을 때 깨우친 지혜가 있다면 ‘인내하라’는 것이다. 캐서린 메이가 쓴 책에서도 일상에서 인생의 겨울을 보내는 지혜를 압축하여 요약하면 결국 곤란한 상황을 부정하지 말고 담담하게 맞이하며 견디라는 것이다. 사실 뜻하지 않은 곤란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흔히 자신이 크게 잘못 살아온 것 같지 않은데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는 사실을 수긍하지 못하고 마음에 분노를 가득 품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분노는 곤란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더한 위험 속으로 인생을 몰아가게 된다. 불가항력의 곤란한 상황 속에서 무방비로 소나기를 맞듯 고난을 맞이해야만 한다. 그래도 고난 속에 무너지지 않고 인내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불청객으로 찾아온 곤란도 때가 되면 우리로부터 떠나간다. 우리가 경험하고 사고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유한하다. 현재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우주도 언젠가 팽창을 멈추고 무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이때 공간과 함께 시간도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경험과 사고가 도달하기에는 어마하게 광활한 영역이지만 나는 우주라는 시간과 공간도 생명이 다할 때가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것이 유한하다’라는 명확한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젊음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고 때가 이르면 생명이 다하는 것,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계절의 변화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아침저녁으로 초겨울의 날씨를 며칠 동안 나타내고 있다. 물론 일시적인 기상 현상으로 곧 평년 기온을 되찾아 청명한 가을의 날씨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겨울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기분이 든다. 서서히 윈터링, 즉 겨울나기를 준비할 때이다.

유감스럽게도 온화한 햇살이 좋은 가을은 짧다. 오래 우리 곁에 머물지 않고 떠나가는 이 계절을 따라 우리의 몸과 마음도 분주해질 것이다. 이 시기에 상실에 대한 조바심을 잊기 위해 서양에서는 숱한 축제를 구상했을지도 모른다. 중세시대의 수많은 축제들이 현실의 고달픔을 잊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그래도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리라는 기대가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대가 있기에 곧 다가올, 삭막한 겨울을 견디게 될 것이다. 겨울이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도 봄이 되면 아지랑이와 함께 흔들리는 기적 소리와 함께 달려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자연에서 인생의 겨울을 견디는 지혜를 배울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겨울나기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