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는 풍경(1)
봄에 다녀갔던 양수리에 다시 왔다. 구의동에 살던 신혼때에는 마실 다녀오듯 자주 찾았던 곳이 양평이지만, 지금 사는 곳이 이곳과는 정반대인지라 아무래도 자주 오기는 힘든 곳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가끔이라도 찾게 되는 이유는 이곳에 전망 좋은 카페가 있어서다. 양수리의 세미원 인근에 있는 카페 리노는 요즘 유행하는 베이커리 카페다. 출석하는 교회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지라 주일 예배 후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오고는 한다. 빵도 맛있지만 한강변과 바로 접해 있어 양수대교가 지나는 풍광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꽤 규모가 있는, 잘 자란 나무가 빽빽한 공원과 바로 인접해 있어 공원을 따라 걷다보면 산책로와 자전거길로 가꾼 구 경춘선 철교와 연결, 철교를 따라 한강을 가로지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양수리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아직은 초록이 남아있지만 지난 여름 한 철 푸르던 나뭇잎이 윤기를 잃고 서서히 퇴색하고 있다. 작년 가을, 이곳에 왔을 때는 나뭇잎이 짙게 물들다 기력을 다하고 떨어져 말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다. 지금은 만추(晚秋)를 언급하기에는 섵부른 풍경이지만, 오래지 않아 가을은 깊이를 더하다가 급기야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갈 것이다. 문득, 자연도 삶도 저기,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찬란한 자신의 시간을 장식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대자연의 넉넉한 모습을 흘러가는 강물에 투영해 본다. 더불어 우리의 삶도 저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연령의 단계를 밟아 살면서 지난 시간이 새로운 시간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 또한 그렇게 세대를 거듭하는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생명 현상 앞에서 미련을 남기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다. 거침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한 해의 생명 활동을 멈추고 휴식을 준비하는 나무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 순응할 따름이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소멸을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일 년 전 이곳에서 떠나가는 가을을 바라보며 썼던 ‘카페 리노에서’라는 제목의 시를 다시 떠올려 본다.
하늘과 강물은 푸르고
사이에,
산은 붉게 물들었다
나무들 서서히 잎을 떨구고
멀리, 굉음을 뿌리며
기차는 떠나가는데
얼핏 차창으로 본 듯한
그리운 얼굴 함께 떠나가고
다시, 그리운 이름들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며
벌써 그리워하는 가을
연꽃이 시든 양수리
카페 리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