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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낭만의 ‘낭’ 자도 모르는 청춘이었다

-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더라 2(1)

by 밤과 꿈

아내와 결혼을 해서 삼십 년을 넘게 살고 있지만 아내는 자주 난감한 상황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 주로 내가 말 한마디를 잘못 내뱉는 바람에 곤란을 경험하거나 귀찮은 상황에 스스로를 던져 넣고 마는 것이다.


미장원을 다녀온 아내가 묻기를, “여보, 가르마를 바꿔봤는데 어때?“

“응, 괜찮네.”

“괜찮다는 게 무슨 말이야?

순간, 나는 아차차 하고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깨닫는 것이다.

“잘 어울린다고 아니고 괜찮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아내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오면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아내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집요하게 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치도곤을 치르고 난 다음에야 아내는 쇄기를 박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고 갚는다는데, 당신은 참 말도 못 한다.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말 한마디를 해도 정이 안 가게 말하냐.”


뇌경색으로 칠 년을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우리는 평소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랑해요”라고 직접 말을 하다 보면 내 마음도 세상도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사랑해요”라는 말로 작별 인사를 했다. 평소에는 내 말에 그저 웃기만 하셨던 어머니께서도 그때는 심한 언어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같은 말로 화답하셨다.

지금은 아내와 딸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내뱉는 내 말이 처음에는 생뚱맞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속으로는 기분이 나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에 아내가 반드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을 거슬러 유치해지는 경향이 이 있다. 아내와 딸이 느끼기에 내가 예전보다 부쩍 잔소리가 는 모양이다.

언젠가 딸이 말하기를, “엄마, 요즘 아빠가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것 같지 않아?”

“그렇지? 네가 느끼기에도.”

“아빠, 어디 가서 그러면 젊은 사람들한테 꼰대 소리 듣는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잔소리가 심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하지만 자신에게서 그 모습이 나올 줄은 몰랐다.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툴툴거리다 보면 어김없이 아내에게 핀잔을 듣게 된다.

“말로만 사랑한다 하지 말고, 행동을 좀 고쳐 봐.”

“……“

이럴 경우 대개 남자는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여자가 하는 말에는 틀린 구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라는 인간은 말주변이 없어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말 한 번 잘못해 남에게 입힌 상처를 되로 주고 말로 받고는 했다.

대학교를 다닐 때, 나에게는 첫사랑인 여학생 H가 있었다. 이 년동안 지겹도록 썸만 탔던 기억 밖에는 추억이랄 것도 남지 않아 더욱 아쉬운 사람이다. 다른 글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었지만 H는 후배가 먼저 좋아했던 여학생이었다. 또한 우리 모두는 같은 동아리의 선후배 사이이기도 했다. 남녀 사이의 감정은 건들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듯 마음에 이는 가벼운 파랑으로 찾아온다.

“형은, 제가 축제에 파트너가 되어 달라면, 안 되겠죠?”라는 H의 말이 그랬다. 짧은 순간에 바람처럼 스치는 말 한마디가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 H를 여자 후배가 아니라 여자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H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뜻밖의 말에 대답할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H에 대한 후배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큐피드의 화살은 이미 활시위를 떠난 일, 오래지 않아 나는 H에게 고백을 해야 했다. “언젠가부터 네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라고.


그런데, 연애라는 청춘사업이 생각처럼 쉽게 굴러가지 않았다. 이른바 ‘썸’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단계가 시작된 것인데, 같은 동아리 선후배 사이인데도 쉽사리 만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마주쳤는데도 우리 둘 사이가 소문이 났다는 언질과 함께 “잘 될 수도 있었는데, 모든 게 끝났어요”라는 것이다. 그냥 끝을 내자면 될 것을 잘 될 수도 있었다니, 진정성이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 H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하고 속이 뻔하게 보이지만, 속내를 먼저 드러낸 여자의 자존심이겠거니 하고 이해했다.

내가 H에게 고백한 이틀 후 문과대학 휴게실에서 H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도 그렇다. H가 옅게 화장을 했길래 “너, 화장을 했네”라고 말했더니만, H가 말하기를 저녁에 미팅을 한다면서 ”멋있는 남자를 만날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예쁘다고 말을 해 줄 법도 했지만 그렇게 대화의 줄기를 꺾어 버리니 “그래, 미팅 잘해라”라고 말해 줄밖에. 사실,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인 H가 미팅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이왕 하는 미팅을 잘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아마도 그 말이 아니라도 예쁘다는 말은 안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H가 처음 하는 화장이라 화장의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빈말을 잘 못한다. 오죽하면 어렵게 H를 마주한 자리에서 “난 널 좋아하지만, 아직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겠다”라고 H의 속을 뒤집어 놓았을까. 이제 막 이성으로서 상대를 생각하기 시작한 마당에 떠올리기에는 사랑이 너무 가볍다. 내 경우에는 한눈에 반하는 사랑이란 없다. 그래도 립서비스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내 생각이 너무 무겁다. 그러고선 내가 “우리 좋은 선후배로…”라고 말하는 순간 H는 자리를 막차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오해가 없는 법이다. “부담 없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함께 사랑을 찾아가 보자”라고 이어서 말할 참이었다. 지금 생각할 때, H와 좁혀지지 않는 갈등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같다’가 아니라 ‘같아 보인다’라고 굳이 말하는 것은 H가 내 진심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빈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아내와 딸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사랑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주변머리라고는 전혀 없는 나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킨 것은 아내의 현명한 처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이십 대의 나는 낭만의 ‘낭’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낭만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낭만’이란 ‘사랑’을 ‘동경’하면서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는 길에 있기에 나는 H와 그 길을 가고 싶었다. 사랑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정이며, 함께 하는 사랑이란 그 과정을 두 사람의 의지로 채워가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그 믿음을 H와 공유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에게 청춘은 아픔, 그리고 외로움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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