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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멸을 말해야 한다

by 밤과 꿈


한 해가 다 가기 전 그만 끝내자,

하고 서로가 말은 없어도 표정은 이별을 예고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떠도는 말은 공허했고

조바심이 난 시간은 매일 피를 토하며 흘러갔다

저물어 가는 시간 속에

마음도 각혈을 하면서 이별을 연습하고 있지만

말은 녹슬어 격발이 되지 않는 총과 같았다

냉전- 총성 없는 전쟁이

우리 사이에

화강암처럼 견고한 벽을 쌓고

흘러간 시간의 두께로 이끼가 자랐다

앙다문 입 속에서 말이 되지 못한 생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래

우리 사랑은 부패하고 있었다

더 구차해지기 전에 그만 끝내야지,

생각은 내뱉어 말이 되지 못하고

서로 외면하며 둘 곳 없는 시선은

퇴근길의 무수한 어깨를 본다

분주하지만 조바심으로 움츠러든 어깨들을

이미 커피는 식어 맛을 잃었고

벽시계의 초침은 가벼운 찰과상에도

비틀거리며 몸을 이끌고 있었다

가벼운 상처도 오래되면 곯아 터지는 법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사랑이 발목에서 질척일 때

우리는 소멸을 말해야 한다

겨울의 끝에서 깨어나는 봄을 위하여

사랑이 떠난 마음자리에서 사랑을 시작하기 위하여

들불을 일으켜 무너진 폐허를 경작하듯

이제, 우리는

아주 소멸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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