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지만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안고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9)

by 밤과 꿈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 뜻한 바 삶의 목표를 모두 이루고 이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질문이 가진 심각함에 비해 그 답은 누구나 짐작할 만큼 단순하면서도 명료하다. 나라면 “거의 없다”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굳이 ‘거의’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까닭은 혹시 죽음을 앞둔 순간에 자기 삶의 목표를 온전히 이루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삶의 목표를 이루고 생을 다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는 내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삶의 목표라는 것은 한 사람이 추구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망이라는 것은 끊이지 않고 몸피를 불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테네시 월리엄스의 희곡 제목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같이 욕망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주 거침이 없다. 이와 같은 욕망의 특성은 자본주의의 특성인 ‘확대 재생산’을 그대로 빼닮았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욕망은 근대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분이 고정된 사회에서는 욕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신분의 제약이 모든 욕망을 가능케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뚜렷한 삶의 목표도 제한적으로 설정 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끝 간 데 없는 욕망의 근대성은 확실히 산업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부의 축적과 신분의 상승이라는 물욕과 명예욕은 분명 근대에 이르러 명확해진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들 욕망은 ‘확대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자본의 속성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욕망은 궁극적으로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욕망과는 결이 다른 것으로 소망이 있다. 소망의 사전적 의미는 ‘바라고 원함‘이다. 얼핏 욕망과 비슷하게 생각되면서도 다른 것이 소망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보편적으로 욕망은 산업화 시대의 물질제일주의 풍조와 연관이 있다. 그만큼 목적과 목표가 뚜렷하다. 한마디로 사심이 잔뜩 끼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소망은 어떤 사심이 느껴지지 않게 순수하다. 명확한 목적도, 목표도 드러나지 않고 그저 좋아서 바라고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망은 신앙과 같은 간절함, 그리고 첫사랑과 같은 순수를 지탱하는 동력이다. 소망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작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본능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 정신으로 예술사는 새 시대를 열어왔다. 그 정신의 기저에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소망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는 모든 작가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남의 글을 훔치는 작가도 있고, 남의 화풍을 훔쳐 자기 것인 양 전시하는 작가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또한 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진 작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크게 탓할 일도 아니다.


오직 음악 만을 소망하며 31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다 간 작곡가가 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우리에게 600여 곡의 아름다운 노래를 선사하고 매독이라는 썩 아름답지 못한 질병으로 생을 마감한 작곡가. 그래서 더욱 슬픈 이름의 이 작곡가는 교과서에서 ‘가곡의 왕’이라는 별칭으로 소개되었었다.(지금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물론 리트라는 독일 가곡의 분야에서 슈베르트가 차지하는 위상이 어떤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절대적이지만, 자칫 이런 표현은 슈베르트의 능력과 업적을 가곡이라는 분야에 한정 짓게 될 오류가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슈베르트가 남긴 기악곡들은 그 음악성과 음악사적 기여도에 있어서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어 왔었다. 슈베르트의 기악곡은 그와 동시대를 겹쳐 활동했던 선배 베토벤의 위대한 기악곡과 어쩔 수 없이 비교되어 그 가치가 폄훼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낭만주의 음악으로서 슈베르트의 기악곡이 합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사실 정신은 낭만주의적 이상을 지녔으나 고전주의의 형식미를 지켰던 베토벤의 기악곡에 비해 슈베르트의 기악곡은 산만하고 균형감이 떨어진다. 특히 그의 피아노 소나타는 일면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었는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베토벤에 비해 슈베르트의 평범했던 피아노 실력은 피아노라는 악기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은 기능적 편의성이 떨어져 연주가 어려운 편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한 베토벤의 신중한 작곡 방식과는 달리 떠오르는 악상을 따라 물 흐르듯 작곡하는 슈베르트의 작곡 방식이 그의 음악을 산만하고 균형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지게 했다. 베토벤의 기악곡에 비해. 슈베르트 스스로가 자신의 음악적 멘토인 베토벤에 비해 작곡 능력이 떨어진다고 인식하고 있었으니 그의 기악곡에 대한 오해가 오래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슈베르트가 살았던 시대, 즉 음악사적으로 고전주의의 끝자락이면서 낭만주의의 여명기였던 18세기의 후반에서 19세기의 초에서는 교사라는 직업은 음악가로서 안정된 삶이 보장된 직업이었다. 슈베르트는 이를 마다했다. 오직 음악을 작곡하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직업적인 음악가라는 당연한 바람이었겠지만 그 시대로서는 아직은 허황된 꿈일 수도 있었다. 슈베르트의 선배 격인 고전주의 작곡가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에 속한 음악가로 살았고 모차르트 또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악장이 되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실패해 가난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베토벤은 귀족의 가문이나 왕가에 예속되지는 않았지만, 음악 향유를 신분의 상징으로 알았던 귀족들의 후원에 힘입어 새로운 경향의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다. 반면, 슈베르트는 안정된 직장이나 후원 없이 오직 음악에 대한 소망으로 짧은 생을 살았다. 지금도 유명한 비엔나 소년합창단의 단원으로서 청소년기에 받았던 음악 교육 이외에는 정규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던 슈베르트이기에 늘 자신의 부족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슈베르트가 죽기 직전에 쓴 일련의 기악곡에서는 낭만주의의 서막을 열었다고 할 만큼 진일보한 음악을 작곡했다. 그 지점에서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깝게 생각되지만 슈베르트 스스로도 음악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슈베르트가 생을 마감한 1828년에 작곡한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21번 소나타에는 그와 같은 슈베르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곡의 규모도 음악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슈베르트의 복잡한 심경인 듯 생각되는 것이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은 것은 간절하지만 더는 지속할 수 없는 소망을 안고 세상을 떠나는 슈베르트의 심경이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중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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