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군산 철길마을을 다녀왔다.
지명을 따라 경암동 철길마을이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지금은 관광 명소로 유명하지만 원래 제지회사에 신문용지를 공급하기 위해 개통된 철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철로에 바투 가옥이 들어섰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기적의 소음을 어떻게 견뎠을까 생각하다 철길 개통의 유래를 알고 나니 이해가 된다.
다녔던 초등학교 인근에 철길이 있었다.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겨우 하루에 두 차례만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이었다.
기적이 시끄럽다기보다는 길게 여운을 남기고 사라지는 그 소리에 그리움과 같은 낭만을 어린 나이에도 느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경강동 철길에도 드문드문 기차가 다녔을 것이다.
소음 공해가 생각만큼 심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관광객을 위한 상점으로 변신한 마을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뽀빠이와 라면 땅, 그리고 밀크 카라멜과 같은 초등학생 시절에 맛보았던 과자였다.
물론 지금 만든 과자가 옛날의 맛을 완벽하게 재현했는지가 의문이었고 포장 디자인도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추억에 빠져들기에는 충분한 아이템이었다.
더 시간을 거슬러 가면 변변한 과자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술을 내리고 남은 술지게미가 좋은 군것질 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술지게미를 구멍가게에서 팔았는데 이를 가게 주인은 잘라 재활용한 신문지에 퍼담아 주었다.
그 오묘한 맛이 좋았는데 지금 먹어도 그 맛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다.
신문지를 포장지로 재사용할 만큼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문지는 잘라 화장실의 화장지로도 사용했었다.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의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 뻣뻣한 신문지를 사용하기에 부드럽게 만들 요량으로 구깃거렸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변변한 화장지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연탄불에 구워 먹기도 했던 쫀드기와 월남방망이라고 부르던 막대사탕은 영세하나마 기업에서 제작, 판매되었던 과자였다.
빙과류가 넘쳐나는 요즘과는 달리 대형화되고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업체가 전국에 산재해 만들어내던, 아이스케키라는 빙과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사람이 직접 나무상자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아이스~케키이~."라고 외치며 판매하던,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운수가 좋으면 판매원으로 일하는 동네 형을 만나 공짜로 아이스케키를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던 유년기의 한옥에서는 어떤 군것질 거리가 있어 심심한 입을 달래곤 했을까?
여름이면 갖가지 과일과 미숫가루가 있어 심심한 입맛과 더위를 함께 해결했을 것이다.
추석이나 설과 같은 명절이면 떡이나 송편, 약과와 쌀, 보리, 들깨 등으로 만든 한과나 식혜, 수정과가 좋은 군것질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조금 컸을 때의 기억이지만 명절에는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잔뜩 음식을 했었다.
냉장고가 없었던 시절이지만 한옥에서는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름에도 선풍기도 없이 부채만으로도 능히 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남쪽 지방에 살았어도 그랬으니 지금과는 환경이 달라도 많이 다른 시절이었다.
이상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군것질 거리이고 유년기의 기억에 남아있는 먹거리라면 딱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야끼모라고 기억하는 것으로 납작하게 자른 고구마를 연탄불에 구워 젓가락으로 찔러 먹었다.
야끼모는 군고구마를 일컫는 일본어인데 통째 굽는 군고구마와 구별하여 이 외국어를 사용했는지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임이 분명한 것으로 일본 스타일의 군고구마가 이런 것인지도.
연탄재가 묻기 쉬워 아무리 재를 털어낸다고 하더라도 썩 위생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린 나이에 내가 야끼모를 직접 구웠을 리는 없다. 그리고 야끼모의 맛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야끼모를 기억하는 이유는 아끼모 자체보다는 야끼모를 구울 때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불의 온기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기억하는 또 하나의 먹거리가 빼데기죽(주로 빼떼기죽이라고 불렀다)이다.
지금은 통영의 토속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남해안 일대에서는 많이 만들어 먹던 별미 먹거리였다.
야끼모와 마찬가지로 빼데기죽도 고구마를 주재료로 사용한 먹거리다.
빼데기 죽은 말린 고구마를 팥과 함께 푹 고아 만든 것으로 과식하여 어릴 때에는 배탈이 나도록 먹을 만큼 좋아했었다.
통영의 명소인 동피랑 벽화마을에서는 지금도 빼데기죽을 파는 곳이 있다.
몇 년 전 통영을 여행하면서도 추억의 빼데기죽을 먹지 않았다.
그때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었기 때문이었다.
빼데기죽에 입맛이 돋는 계절은 겨울이다.
아랫목에 앉아 뜨끈한 빼데기죽을 먹을 때 그 맛은 최고다.
연탄불의 온기를 느끼며 야끼모를 먹었던 때도 겨울이었을 것이다.
많은 군것질 거리 중에서도 유독 겨울 먹거리가 기억되는 까닭이라면 그만큼 내가 겨울이라는 계절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남쪽 지방은 일 년에 눈 한 번 구경하기 힘든 곳이다.
따라서 눈이 쌓인 겨울을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괴괴하여 겨울의 찬바람 소리 만이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그리고 지쳐 기력이 쇠한 이파리를 떨구어 앙상해진 나무가 연출하는 겨울의 삭막한 밤과 낮 풍경을 좋아한다.
이와 같은 겨울에 대한 애상은 유년기에서부터 내 마음에 착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삭풍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린 마음에 내용도 없는 상념을 일으키는 겨울의 바람 소리와 어둠의 깊이는 긴 겨울밤을 견디는 군것질까지 절절하도록 했기에 잊히지 않는 풍경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