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민음사, 유숙자 譯)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 '설국'이 시작되는 문장으로 현실세계와는 동떨어진, 허무가 짙게 깔린 소설 속 공간으로 독자를 이끌고 가는 안내문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실제 배경은 행정구역 상으로 니기타 현에 속해 있는 에치고유자와라는 곳으로 유독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군마 현에서 시미즈 터널을 빠져나와 마주 하는 에치고유자와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실존했던 게이샤 마쓰에를 소설 속 인물인 고마코의 모델로 하여 소설 '설국'을 썼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이라고 지칭한 이곳의 실제 지명을 소설에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소설 '설국'이 에치고유자와를 사실적 공간으로 선택하고 있지만 소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섬세하고 탐미적인 문장으로 완성한, 허무라는 미학이 지배하는 상상 속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설국'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특유의 시적인 서정으로 완성된 소설로 이른바 허무라는 동양정신이 바탕에 깔린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 간의 명확한 서사가 없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아름답지만 난해한 소설이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소설이다.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장, 즉 미문(美文)을 싫어할 이유는 없지만 탐미적인 소설 자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삶과 유리된 문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설 '설국'에 짙게 깔린 허무가 서양인의 시각으로는 동양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이에 매료된 면이 있었기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 '설국'에서 구현한 허무가 동양 정신의 전부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없다. 서양인들은 '설국'이라는 소설에서 일반적인 동양의 정신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설국'은 일본의 정서를 기저로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 연설문의 제목도 '아름다운 일본'이었다. 이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공감하는 부분이 크지는 않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정적인 문장은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지만 그의 탐미적인 미학에 무조건 공감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소설의 주조를 형성하는 일본적 정서가 그다지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를 찾으라면 이 소설의 첫 문장이 지닌 강렬한 흡인력에 있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만나는 눈의 고장, 설국은 매년 일찍 찾아온 겨울에 감당하기 힘들 만큼 눈이 쌓이는 곳이다. 눈이 많아 겨울 휴양지로서 외지인의 발길을 잦지만 소설이 제시하는 심리적 거리를 생각할 때 이곳이 오지라면 오지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첫 문장이 심리적 거리의 깊이를 조장하고 있다.
차량을 이용할 때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라면 서울에서는 가까운 편에 속한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 자가용 승용차가 대중화되기 전,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도시 간을 이동하자면 저녁 아홉 시에 차편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경우 두 도시 간을 드나드는 심리적 거리는 상당하다고 느끼게 된다. 특히나 섬에서라면 육지를 생각하는 심리적 거리는 더하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변했으리라 생각하지만, 예전에는 섬사람에게 육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섬생활이라는 것이 척박했다는 뜻이다. 결국 오지란 실제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이 두 가지가 복합되어 경험하게 되는 고립과 연관되어 있다.
간헐적인 심리적 고립감이야 현대인이라면 늘 느끼며 살아가지만 고독이 체화되어 마음 한구석에 곳집처럼 음습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택지를 조성하여 뻔한 집을 짓듯 마음자리에 오지가 터 잡게 되는 것이다.
내 마음에도 오지가 있다. 그것도 돌보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그늘이 져서 눅눅한, 꽤 넓은 오지가 마음에 있다. 그것은 내 삶의 여정이 남긴 유산으로 나는 내 마음에 자리한 오지가 싫지 않다.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문재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내가 그립다"(이문재 詩, 마음의 오지), 처럼 그리워서, 내가 그리워서 때때로 등불을 밝히고 쓸쓸한 마음자리를 더듬어 스스로를 확인한다.
타인과 뒤섞여 산다는 일,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거의 자신의 참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그러진 모습일망정 지난 시간 속에서 융해되고 침전된 자신의 참모습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음의 바닥을 더듬어 진실된 자신을 마주한다. 그래서 내 마음에 내가 가꾼 오지를 좋아한다.
소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서양무용에 대한 평론을 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실제 무대에서 공연되는 서양무용을 본 적이 없다. 서양 잡지에 소개된 내용을 번역, 소개하면서 평론가 행세를 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무용 평론가가 시마무라의 참모습일 수는 없다.
시마무라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땅, 설국에서 편안할 수가 있다. 그곳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소설 '설국'의 주제는 아니다. 시마무라, 고마코와 함께 삼각관계를 형성하는(그렇다고 구체적인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코의 죽음으로 소설이 끝나는, 진한 허무가 (굳이 찾자면) 소설의 주제다. 그리고 그 정서는 "(시마무라가)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민음사, 유숙자 譯)라는 소설의 아름다운 마지막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래도 나는 소설 '설국' 하면 내 마음에 자리한 오지를 먼저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