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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대의 아픈 초상(肖像)

-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

by 밤과 꿈

지난해 7월 21일 학전 대표 김민기가 향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올곧은 삶의 궤적이 뭇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김민기는 1970년대에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선율의 노래로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노래가 민주화되지 못한 시대의 시의(時宜)를 잘 반영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고 대중으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덕분에 한 장의 음반을 남긴 채 주옥같은 그의 노래는 더 이상 음반으로 발매되지 못했고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의 공연 테이프로 한정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1990년대에 학전의 유지 비용을 마련할 목적으로 넉 장의 음반으로 제작된 김민기 전집이 나올 때까지 그가 작사 작곡한 대부분의 노래가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불리고 알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전집이라고 해서 김민기의 노래 전부가 음반에 수록된 것은 아니었다. '공장의 불빛'을 비롯한 노래극의 형식으로 된 곡들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 탄생한 배경은 2004년 공식적으로 출반된 음반에 수록된 김창남(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으로 '공장의 불빛' 녹음에 참여했다)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민기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유신 치하의 암흑기에 지하에서 은밀하게 녹음되고 불법으로 유통되었던 것을 2004년에 재녹음, 정식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김창남에 의하면 1978년 겨울의 어느 날, 자신을 비롯한 대학 노래패(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일 것이다)의 동료와 함께 신촌의 다방에서 김민기를 만났다. 그날 이화여대의 방송반 스튜디오에서 '공장의 불빛' 노래 파트 녹음이 시작되어 여러 날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반주 파트 녹음은 가수 송창식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어둠을 틈타 담요로 창문을 가린 채 이루어졌다고.

이렇게 이루어진 녹음은 카세트테이프로 제작, 음성적으로 대학가에 퍼져 나갔다. 테이프의 B면은 인성을 뺀 반주로만 제작, 누구나 반주에 맞춰 노래를 익힐 수 있게 했다. 이는 노래가 지닌 운동성의 확장이라는 효용을 생각할 때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과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제작되었던 '공장의 불빛'은 2004년에 다시 녹음되어 CD로 제작되어 공개적으로 발매되었다.

이에 대하여 김창남은 "우리 모두가 힘겹게 거쳐 왔던 저 70년대 이래의 투쟁과 좌절과 고난의 역사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며 너무나 정당하고 자랑스러운 것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 가지는 음악사적 의의에 대하여는 "70년대를 걸쳐 작곡자 자신이 단련해 온 음악적 역량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이후 김민기의 관심이 더 이상 단형의 노래에 머물지 않고 뮤지컬 쪽으로 선회하는 것에서도 드러나듯 '공장의 불빛'은 작곡자의 노래 시대를 총결산하면서 이후의 새로운 작업을 예비하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절정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래굿 '공장의 불빛'에 대한 상찬에 가까운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은 것은 1970년대가 우리의 현대사에서 점하는 의미와 관련하여 이 작품을 생각할 때 '공장의 불빛'이 1970년대라는 시대의 명암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보여주는 내용이 그 시대에 결코 허락될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음악적 가치에 더하여 이 작품 자체가 시대의 억압을 전도시키는 가치까지 이 작품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산업구조의 근대화를 가져온 시대였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1차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2차 산업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이것이 1970년대의 밝은 면이라면 이와 같은 산업 구조의 근대화가 노동자들의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어두운 면이 짙게 깔린 시대가 1970년대였다.

1970년대에 고등학교 졸업자의 30 퍼센트 정도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다수는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산업 역군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얻었지만 사회에서 공돌이, 공순이라는 멸칭으로 불리면서 사회 구성원의 외곽에 머물러야 했다. 계속되는 야근과 같은 노동력 착취와 인권 유린은 이 작품의 계기가 되기도 한 동일방직 사건이나 YH무역 사건을 낳았다.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불평등한 현실은 사회문제로 부각되었지만 경제발전의 당위에 가려 개선되지 못했다.

노래굿 '공장의 불빛'은 이처럼 1970년대라는 가난한 시대의 아픈 현실을 담고 있다. 당시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우리의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지난 시대의 어두운 모습은 현실이 아니라 빛바랜 우리의 자화상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공장의 불빛' 중에는 '이 세상 어딘가에'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평등과 평화 넘치는 자유의 바닷가"

이 노래를 듣고 있는데 곁을 지나가던 아내가 한마디를 거든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답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선진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산업 현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안전장치가 미비해 기계에 몸이 끼어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낯선 땅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유린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귀족 노조의 폐해가 있지만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영세 기업의 노동자가 훨씬 많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1970년대라는 가난한 시대의 아픈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장의 불빛'에서 노래하고 꿈꾼 세상은 여전히 유효한 희망이 될 것이다.




1970년대를 노래한 젊은 날의 김민기(1951~2024)







https://youtu.be/KgqSJ5TZg-k?si=ikVqlahuqKEjScqD

'공장의 불빛',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2집에서


https://youtu.be/36CQI_Egd3E?si=Z1GcCSovruenucP0

노래굿 '공장의 불빛' 중에서 '이 세상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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