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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가 그리운 정원을 꿈꾼다

화가 강요배의 '파초와 달'

by 밤과 꿈

태어나서 자랐던 곳이 따뜻한 남쪽 지방이라서 어릴 때 중부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식물을 비교적 많이 보고 자란 편이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연결되는 동네의 어느 집 담벼락에 생소하게 생긴 열매를 늘어뜨린 무화과(어른들은 그 과일을 일본식 이름으로 이찌지꾸라고 알려줬다)가 그랬고, 뒷동네에서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길 모퉁이집의 울타리로 사용된 탱자나무도 그랬다.

더 어려서 살던 동네에서는 앞집 정원에 큼지막한 잎사귀가 멋진 파초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집에는 월계나무가 있어 그 푸른 잎사귀로 베개의 속을 채우기도 했다. 특히 아버지께서 월계나무를 아껴 이사를 가면서도 그 나무만큼은 옮겨 새집에 식재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앞집의 정원에서 본 파초라고 할 수 있다. 워낙 타고난 자태가 당당해서 그렇겠지만, 어릴 때 듣곤 했던 '파초의 꿈'이라는 유행가에 대한 기억도 한 몫했었으리라 생각된다. 어린아이가 좋아할 만한 노래는 아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문정선이라는 여자 가수의 음성이 시원시원해서 좋았다.

지금은 서구화된 가옥에서 화분에 식재한 상태로 키울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도 키울 수 있도록 작게 개량된 종을 쉽게 구할 수도 있어 공기정화 식물로 인기가 있는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파초는 정원의 한구석을 차지한 당당한 모습이 좋다. 파초의 그런 모습을 어릴 때 이웃집에서 목격했으니 운이 좋았다. 식물원의 온실 속에서 보는 모습과는 격이 다르다.


파초라면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것으로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수필 '파초'가 있다. 상허가 서울 성북동에 한옥을 지어 수연산방이라 택호를 짓고 정원을 가꾸면서 큼지막한 파초를 한 그루 심었다. 그가 쓴 수필 '파초'를 읽으면 이태준의 파초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파초는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 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담은 듯 우울할 때 파초 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대단한 파초 사랑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 찻집으로 변한 성북동의 수연산방에는 파초가 없다.


이태준의 글을 읽으면 나도 파초가 당당한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지 않는 한 쉽지 않은 꿈일 것이다.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꿈을 꾸듯 파초가 큰 잎사귀를 드리운 정원을 공상한다고 크게 흉이 될 일은 아니지 싶다.

'파초와 달'이라는 강요배의 그림이 있다. 고향 제주의 풍경과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온 화가 강요배의 정물화도 풍경화에 못지않게 좋다. 오히려 나는 그의 풍경화보다는 정물화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그의 정물화는 기존의 정물화가 가진 틀을 벗어난다. 화초를 그려도 기명절지와 같이 화병에 꽂힌 뿌리 없는 꽃이 아니라 풍경의 일부인 화초를 확대하여 그렸다. 풍경과 정물의 경계가 모호하다. 강요배의 그림에는 어떤 오브제를 그렸는데 추상화로 보일 만큼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지워버린 경우도 있다.

'파초와 달'에서도 그림의 소재인 파초와 달을 제외한 배경을 모두 삭제, 풍경과 정물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둥근달의 밝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톤의 그림이다. 아쉽게도 나는 달빛이 괴괴하게 흐르는 정원의 모습을 좋아한다. 달빛 아래 잠든 화초 사이로 은밀하게 나누는 벌레의 밀어에 눈과 귀가 솔깃해진다. 비록 현실적으로 정원이 딸린 집이 요원한 꿈이라면 대신 파초가 있는 이런 그림 하나 서재에 걸어놓고 싶다. 그리고 그 그림을 정원인 양 여기며 달 밝은 밤에 책이 내 영혼을 건드리고 깨우치는 속삭임을 듣고 싶다. 그렇지만 이런 바람은 정원이 있어 파초를 심어 가꾸는 꿈보다 더욱 이루기 힘든 꿈이 아닐까. 강요배라는 유명 화가의 그림이라면.


강요배 作 '파초와 달'(캔버스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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