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디 거스리가 가사를 쓴 'Deportee'
미국의 한국 노동자 추방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의 시선이 좋지 않다. 당연하다. 온전히 미국의 이익에 따라 공장을 건설할 필수인력이 불법체류자처럼 수갑과 쇠사슬에 묶여 국외추방자의 대우를 받는 수모를 겪었으니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의 심사가 편할 리가 없다. 상식과 기준이 통하지 않는 초강대국 미국의 생떼에 가까운 억지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종교적 핍박을 피해 이주한 청교도들을 시작으로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많은 유럽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때 이민자들에게 미국은 가능성의 땅이었고 지금도 성공이 가능한 기회, 즉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기회를 찾아 미국에서 새 둥지를 트는 사람들이 있다. 국력이 약하고 가난했던 시절에는 경제적인 기회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다면 지금은 주로 교육적인 이유로 미국으로 떠나간다. 자식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면 그만큼 이후에 미국에서 정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일지라도 감수하는 DNA에 살아 있어 가족이 기꺼이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낸다. 더 알고 보면 1902년 하와이 이주를 시작으로 한 우리 민족의 미국 이민사는 동포들이 흘린 피눈물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생명의 희생에 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국경을 넘어 미국을 찾는 발걸음이 여전하다. 밀입국을 성공해도 운이 따르지 않으면 미국 이민국에 체포되어 미국 바깥으로 추방된다. 이들을 일컫는 용어가 국외추방자(Deportee)다.
1948년 1월 28일, 28명의 국외추방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미국의 로스 가토스 협곡에서 추락, 4명의 미국인을 포함한 탑승 인원 32명 전원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의 농장에서 불법으로 체류하며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멕시코인 28명을 국경 바깥으로 추방하던 중이었다. 이 사건은 매스컴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졌지만 미국인의 신원 외에 추방되던 멕시코인들의 신원은 밝혀진 것이 없어 전원의 신원이 추방자(Deportee)로 처리된 사건이었다.
이 뉴스를 접한 포크가수 우디 거스리는 이 사건에 분개, 익명으로 처리된 희생자들에게 이름을 지어 붙임으로써 이민 당국의 처사를 비난하고 희생자들의 슬픈 마지막에 분노를 표하는 글을 남기게 된다.
곡물은 모두 익고 복숭아는 모두 썩어가고
오렌지는 방부처리장에서 썩어 가네요
일할 사람들은 모두 비행기에 몸을 싣고
멕시코와의 국경으로 향하고 있네요
(중략)
잘 가요, 후안 안녕, 로살리타
잘 가요, 내 친구들 헤수스와 마리아
비행기를 타면서 당신들의 이름은 없어졌지요
사람들은 당신들을 그저 추방자라고 부르지요
우디 거스리의 글은 바로 노래가 되지는 못하고 10년 뒤에 마틴 호프만이 선율을 입혀 비로소 모던포크의 명곡 'Deportee'가 탄생하게 된다.
이 노래 외에도 불법 체류 중인 멕시코 여인의 애환을 티시 히노호사가 노래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Donde Voy)'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민과 밀입국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다시 말해서, 근본적으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그리고 전 세계의 많은 곳에서 온 사람들이 정착하고 있는 다인종국가이기도 하다. 그래도 백인들은 여전히 미국은 자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의 인종간 갈등의 원인이 이 사실에 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근간이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허락도 없이 남의 땅에 들어와 땅 주인을 쫓아내고 땅을 강탈한 도둑이 아닌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미국이 자신의 가치를 말하기에는 많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민자들이 꿈꾸고 위대한 미국을 건설했던 원동력, 아메리칸드림이 이제는 희망이 사라진 고단한 여정을 강요하고 있다. 또한 그 여정의 끝에서 미국의 한계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s://youtu.be/4jWFPLjYEaw?si=M0vRyYfP92s5Mt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