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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름다움을 말하리라

- 신경림의 시 '햇살'

by 밤과 꿈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고

언덕에 온고을에 불을 질렀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 속에 햇살 불꽃이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 삶에 빛 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 '햇살'의 전문이다. 솔직히 시인이 본격적인 시로 구상하고 쓴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우선 본격적인 시에 요구되는 상징이나 이미지의 환기와 같은 시적 장치를 일부러 회피한 듯 시가 단조롭다. 단조롭다는 말을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 대신, 읽는 사람의 마음에 맺히는 시의 상(象)이 명확하다. 또 하나, 같은 시어의 무의미한 반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시어의 연결 반복은 노래의 운율을 위한 것으로 노래의 가사에 흔히 사용되는 것이다. 실제 이 시는 '민주'라는 제목으로 안혜경이 곡을 써 노래가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시를 노래로 먼저 알아서 듣고 불렀다. 그리고 시집의 형태로 이 시를 읽은 적이 없다. 신경림 시인의 시 전집에도 이 시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시의 원형을 알지 못한다. 짐작하건대 이 시에서 보이는 동일 시어의 연결 반복은 불리는 노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일 수가 있다. 옮겨진 가사가 그대로 인터넷에 올려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혼자 하는 생각이다.


이 시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유튜브에서 노래 '민주'를 오랜만에 들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일주기에 맞춰 출간된 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를 뒤적거리다가 뜬금없이 이 노래가 듣고 싶어 졌던 것 같다. 굳이 그 이유를 찾자면 시인의 생전 마지막 시집인 '사진관집 이층'과 유고시집에서 느끼게 되는 노년의 여유랄까, 관조적인 삶의 태도가 정겨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록된 시에서 길지 않을 여생에 대한 강박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런 마음에 시인의 시집 '농무'와 '새재'에서 발견했던 건강한 생명력이 갑자기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모처럼 청해 듣는 노래 '민주'가 뜻밖에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십일 세기가 된 지도 이십 년도 더 지났는데 민주라니, 우리 사회가 여전히 많은 문제를 떠안고는 있지만 나름 민주화를 이룬 사회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화가 되지 못했던 시절의 아픔과도 서둘러 결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늦었지만 나에게서 한 시대를, 그때의 아픔과 사랑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최근에 계엄령이라는 민주화가 되지 못한 시절의 망령을 경험했다. 너무 터무니가 없어 해프닝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기로는 불행을 자초한 전직 대통령이나 내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듣는 노래가 힘을 잃는다. 그래도 저물어가는 것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는 있다. 비로소 지난 시절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를 두고 잠시 생각할 때, 신경림 시인의 지난 생애도 남겨진 시력(詩歷)도 모두가 아름답다.

신경림 시인(1936~2024)








https://youtu.be/QWinN9yw9YQ?si=p-4XzB5FkNqafY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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