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해가 서쪽에서 뜬다거나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과 같이
세상 불가능한 생각으로
내가 너를 사랑했을 때, 나는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삼엽충과 같은
한 마리 벌레에 불과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시간을 삼키고 배설하면서
한 번도 탈피를 못하는 불통으로
마음까지 굳어 돌덩이가 되도록
영겁(永劫)의 시간을 살아가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제 절개하는 오래된 마음에
억만 겁의 시간을 견디고
무한의 공간을 지나
맥동하는 마음 한 조각이 남아있다면
보석처럼 빛나는 내 순심이거나
미움보다 지독한 그리움이거나 간에
그것은, 내가 너를 무겁게 사랑했을 때
미처 지우고 씻겨내지 못한
아프고 아픈 사랑의 흔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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