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사회가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 윤흥길의 장편소설 '완장'

by 밤과 꿈

최근 환경 미화원을 상대로 갑질을 행사한 공무원이 있어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사건의 내용을 알고 보면 유치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 인격의 소유자가 국민의 공복이라는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물론 가해자가 소속 관청에서 일반 민원인을 대할 때의 태도는 달랐을 것이다. 가해자의 그런 양면성이 더욱 가증스러워서 화가 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갑질은 세간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입주민의 경비원에 대한 갑질은 흔하게 접하는 뉴스가 되었다. 이처럼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갑질의 피해자가 될 수도, 혹은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한 반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에게는 '우수'라는 글자가 새겨진 배지를 달게 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몰랐다. 오히려 그 배지를 단 사실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한 반에 다섯 명도 안 되는 우수 학생을 만들어 놓으면 나머지 한 학년에 삼백 명이 넘는 전교생들은 열등한 학생이라는 의미가 된다. 비록 상대적인 평가이지만 삼백 여명이라는 많은 학생들이 졸지에 열등생으로 낙인이 찍힌 셈이다. 아마도 교장의 아이디어였을 멍청한 제도에 반대하지 않은 선생들이나 뜻하지 않게 비교의 대상이 되어 다수를 열등생으로 만든 당시의 우수 학생들도 교장과 함께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나 변호사들이 배지를 단다. 그만큼 배지는 자긍심의 상징일 수 있다. 그런데 이때 배지에서는 권력 의지가 느껴진다. 예전에는 회사에서도 회사원에게 배지를 달게 했다. 애사심과 그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을 가지라는 의미다. 배지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것으로 훈장과 완장이 있다. 훈장이 자긍심의 상징이라면 완장은 오로지 권력의 상징이다. 작업반장이나 선도부, 그리고 헌병 등의 완장에서 권력의 상징이 보인다. 소설가 윤흥길의 장편소설 '장마'는 완장이 함축하고 있는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의지를 그 내용으로 한다.

"한국인의 권력 욕망과 그 애환이라는 주제를 농경문화가 우세한 1980년대 작은 지방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문학평론가 황종연의 소설 '완장'에 대한 언급과 같이 소설 '완장'은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해 이어진 권력에 대한 의지를 해학적인 문체로 풀어간다. 윤흥길은 우리 역사에 있어 완장이 가진 모순성, 즉 누구나 "한편으로 싫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또 선망"하는 이중적 성격에 주목한다. 또한 완장을 '우리 시대의 한 징후'로 보면서도 "완장을 둘러싼 사람들을 통한 인간 본능의 탐구"에 창작의 의도가 있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복잡한 인간 사회에는 상상의 위계질서와 불공정한 차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사회치고 차별을 전부 없앤 곳은 이제까지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사회의 구성원들을 가상의 범주에 따라 분류하여 사회에 질서를 창조하는 일을 되풀이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권력의 창출은 인류에게 불가피한 일일 터, 권력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본능에 내재된 성향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윤흥길도 소설 '완장'을 집필할 때 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를 이어 내재된 인간의 권력 의지는 소설 속 임종술의 말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땅도 완장이여...... 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지집까장도 여부없는 완장이여."

지금도 오늘을 살아가는 대다수가 이런 사고의 굴레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성공의 요소가 임종술의 말속에 모두 담겨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신화학자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에는 네미 숲의 사제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권력자인 사제왕은 칼을 손에 쥔 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자신의 권력을 빼앗으려는 자를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가 인류의 역사를 이어온 주술을 주 내용으로 한, 방대하고 상당히 어려운 내용으로 이루어져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해석일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합당하게 권력은 행사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낭패를 당하는 전직 대통령도 권력을 잘 못 사용해 불행을 자초했다. 알량한 권력으로 환경 미화원에게 갑질을 부린 공무원이 겪는 낭패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면 자신이 가해자가 되지는 않는지, 자신에 의해 피해자가 되는 사람은 없는지 스스로를 경계할 일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차별이 있는 불평등한 구조로 이루어졌더라도 나는 평등한 사회를 꿈꾼다. 이루어지지 못할지언정 평등사회를 꿈꾸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이 그랬듯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꿈을 꾸었고, 지금도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하여.





집필 중인 소설가 윤흥길(1942~ )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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