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우환의 다이얼로그 연작 중 '조응(Correspondence)'
이우환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의 추상표현주의 회화 중에서도 다이얼로그 연작을 특히 좋아한다. 광활한 여백이 주는 자유로움과 한두 번의 붓질이 생성하는 리듬이 좋다. 같은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그림이라도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 복잡한 프리 재즈(Free Jazz)를 연상케 한다면(실제로 프리 재즈의 창시자 오넷 콜맨의 앨범 '프리 재즈'의 재킷에 잭슨 폴록의 그림 '흰 밤(White Night)'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이우환의 다이얼로그 연작에서는 쿨 재즈(Cool Jazz)의 차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우환의 여백은 제약을 벗어나 프레임의 바깥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우환은 창작에 앞서 평론으로 일본의 예술 경향인 모노하(物派)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일본에서의 활동을 발판으로 세계적인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힌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따라서 그를 생각할 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우리의 예술가라고 여기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예술에 국가 간의 경계가 큰 의미가 없기는 하지만, 그리고 국적으로도 그가 한국 사람임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그의 회화를 형성하는 데에는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 이후 화가로서 활동한 이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소개된 에세이집까지도 대부분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을 번역했다.
그의 회화는 "점은 새로운 점을 부르고, 그리하여 선으로 이어간다. 모든 것은 점과 선의 집합과 산란의 광경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점이며 산다는 것은 선이므로, 나 또한 점이며 선이다" (이우환 저, '여백의 예술'에서)라는 말과 같이 '점으로부터' 연작과 '선으로부터' 연작에서 출발했다. 이후 '바람과 함께' 연작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러 '다이얼로그(대화)' 연작으로 화풍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 일군의 그림에 대하여 이우환은 대담집 '양의의 예술'에서 "내 최근 그림은 캔버스나 벽에 아주 조금밖에 터치를 안 합니다. 아주 작은 이 터치에 의해서 그림이 걸려 있는 공간에 어떤 울림이 퍼지거나, 공기가 밀도를 가져서 공간이 열리면 그것은 환한 장소가 됩니다. 물론 여기서 장소라는 것은 시간성을 포함한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순간'이 장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이우환의 그림을 좋아하는 지점이다. 무엇보다도 이우환의 그림이 시적이어서 좋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의 그림은 구상(具象)의 풍경화처럼 사물을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프레임 밖으로 확장한다.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의미다. 시의 작법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는 우선 언어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감정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생각건대 시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절제를 통해 태어난다. 분산되어 포착되지 않는 시의 씨앗, 즉 언어를 조합하거나 무수히 떠올랐다가 스러지는 언어를 골라 시를 완성시키는 일은 돌이나 나무를 깎고 석고를 주물러 형태를 만드는 조각가의 창작 행위와 동일한 일이다. 그리고 프레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다시 해석된 풍경을 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때 조각가나 화가는 조각의 자세나 화면의 구도에서 긴장을 만들어 낸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시상의 전개에 내재된 리듬을 찾아 시적 긴장을 만든다. 그리고 언어의 조합이 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말하자면 시의 프레임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구성인 동시에 시적 사유를 제한하는 한계인 셈이다. 예술이나 시의 창작이 어렵고, 심지어는 고통스러운 지점이기도 하다.
형식이라는 제약 속에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그 좋은 예를 최승자 시인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의 시 '개 같은 가을이'는 제목부터가 독자를 도발하고 있지만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라는 첫 연부터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시인의 또 다른 시 '슬픈 기쁜 생일'에서는 "오나가나 인생은 퓨즈 타는 냄새를 풍긴다"라는 기막힌 한 문장으로 시는 긴장한다. 이처럼 도발적인 시를 발표,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시인이 선택한 시어가 지나치게 도발적이어서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1980년대 초를 살았던 시인이 그 시대의 사랑을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장석남 시인의 시 '옛 노트에서'에서는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이 조용히 긴장을 가져온다. 시인은 이 문장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뜬 눈으로 지새웠을까.
이우환의 여백을 서양에서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나에게 있어 이우환의 여백은 형식의 제약을 뛰어넘는 자유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무심한 듯 그려져 화면에 리듬을 부여하는 채색은 절제되어 있다. 형식의 제약을 뛰어넘고자 하는 창작의 본성에 더하여 내재된 리듬과 언어의 절제, 내가 시에서 생각하는 많은 것이 이우환의 그림에 담겨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우환의 그림이 부럽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시, 즉 시적 공간에 시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사유를 담는다는 내용을 공간과 시간성을 겸비한 '특정한 순간'이라는 이우환의 발언에서 그의 그림에서 발견하고, 그의 그림에서 이미지화된 시를 읽게 된다. 거듭 그의 그림이 부럽다. 내가 쓰는 시가 이우환의 그림을 닮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