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시인으로 대단한 클래식음악 애호가인 김정환이 그가 쓴 음악 에세이집에서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으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을 언급했었다. 김정환 시인의 선택에 그의 유려한 문장과 함께 크게 공감했었던 기억이 난다. 슈베르트의 음악과 삶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다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선택이기도 하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은 슈베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다. 이는 슈베르트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 그의 사유가 고스란히 이 음악에 이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리트'라는 성악 장르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이미 성과를 이루었던 슈베르트이지만 음악사적으로 고전주의가 낭만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던 당시 리트는 그 가치를 인정받기 전이었다. 이에 기악 작곡가로서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슈베르트가 비로소 의미 있는 대작을 남기게 될 즈음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슈베르트에게 드리워졌던 것이다. 이때, 교향곡 9번과 C장조의 현악 5중주, 그리고 이 곡이 포함된 세 곡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와 같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뿐만 아니라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즉흥곡집이 슈베르트에게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작곡되었던 것이다.
이때 작곡된 곡들이 한결같이 '낭만주의의 화신'이라고 할 만큼 낭만주의 정신의 정수를 포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음악사가들은 슈베르트의 이른 죽음을 아쉬움으로 언급한다. 나아가, 31살이라는 젊디 젊은 나이에 그의 창작력이 왕성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죽음은 클래식 음악의 큰 손실이라고 할 만하다.
김정환 시인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슈베르트의 C장조 현악 5중주에 대하여 말하기를 '음악의 유연(幽然)'이라고 했다. 유연이라 함은 깊고 조용하다는 뜻이다. C장조 현악 5중주를 사무치도록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그 의미를 이해한다. 듣는 마음에 아련하게 스미는 아다지오(Adagio) 악장의 아름다움을 적절하게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 음악을 들으면 듣는 마음이 슈베르트의 심연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대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슈베르트의 C장조 현악 5중주를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해 달라고 했다던가. 음악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만남이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이것이 예술이 가능케 하는 소통이다. 그 예술이 음악일 경우 호소력이 보다 직접적이다.
'유연'이라는 기막힌 표현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에도 적용되리라 생각한다. 이 장대한 소나타에서 슈베르트의 깊은 심연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고요한 심연의 어두운 바닥에서 아스라이 빛을 내는 눈물을 본다.
슈베르트는 독신이었다. 그리고 정해진 거처도 없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피아노도 가지지 못했다. 부유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리트를 작곡, 악보를 출판한 수입도 그렇지만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은 선수금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이외에는 이재에 관심이 없었던 슈베르트이기에 수익을 관리하고 불리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수입의 대부분을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 주고 지지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사용했다. 덕분에 자신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병을 키우게 되었지만.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다. 음악가에 대한 귀족의 제도적인 후원이 끊긴 시대에 교사는 음악가에게 꽤 괜찮은 수입원이었지만 오직 음악으로만 살고자 하는 슈베르트의 소망을 따라 거부되었다.
그토록 음악에 대한 열정이 전부였던 슈베르트에게 진전된 음악의 성과를 목전에 두고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감지하는 심정이 어땠을까. 나는 슈베르트가 남긴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에서 채 사그라들지 않은 음악에의 열정과 이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회한, 그리고 생의 마감을 직감하는 사람이 하는 스스로에 대한 위로를 듣는다. 아름다운 이 소나타의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 Sostenuto)에서 위로가 필요한 마음을 감싸는 선율의 다정한 손길을 느낀다. 순간, 이 음악은 슈베르트 자신을 위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음악으로 슈베르트가 위로와 함께 안식에 들었기를 바란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삶에 지치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게 되었을 때, 남의 위로보다는 자신에 대한 위로가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https://youtu.be/Oh1zaOSkyuY?si=DcwmxUsF-dxXgG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