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두 얼굴, 낮과 밤(2)

- 재즈 색소포니스트 게리 멀리건의 Night Lights

by 밤과 꿈

대도시의 밤은 낮과는 다른 의미로 활기를 띤다. 낮의 활력이 생산적인 것이라면 밤의 활기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소비지향적이다. 따라서 밤에서 얻게 되는 활기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낮의 활력이 의지의 소산이라면 밤의 활기는 본능의 분출이다. 욕망으로 가득한 쾌락의 추구다. 그리고 쾌락은 우리를 화려한 네온사인의 차가운 느낌만큼이나 자신에게 냉소적이게 한다. 본능을 좇는 삶에는 만족이 없다. 만족은커녕 충족되지 못하는 욕구로해서 불안은 늘 상존할 따름이다. 그리고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쾌락에 빠져들게 한다.

이와 같은 일종의 자아 마비와 같은 행동의 반복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가깝게로는 채워지지 않는 본능적 욕구의 충족에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욕구와 이의 추구에 따르는 각종 스트레스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활력에도 채워지지 않는 생활의 욕구가 오히려 우리를 쾌락으로 이끌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피성으로 이끌린 선택지가 본질은 아니기에 그 결과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화려한 불빛에 가려진 어둠, 즉 깊은 공허를 거듭 경험하다 보면 영혼까지 황폐하게 된다. 또한 나락과 같은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밤의 쾌락에 접근하고 쉽게 휩쓸리게 되는 이유라면 누구에게나 힘겨운 생활에서 위안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닐까. 충분한 위안을 찾지 못한다면 차라리 힘겨운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망각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또한 원래 요구되는 밤의 기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방법이 원래의 목적과 다를 뿐이다.

역사시대 이전부터 인간에게 밤은 무엇보다도 두려운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밥톱을 숨긴 위험은 인간이라는 종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은 신화 속에서 밤은 인간 활동을 제약하는 시간, 악이 출몰하는 시간으로 묘사되었다. 감추어진 위험을 피해 밤은 인간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고 햇살 밝은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이 신화가 사라지고 더 이상 연약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이제 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캄캄한 어둠마저 기술의 힘으로 극복했다. 이에 밤은 휴식과 위안의 시간 만은 아니게 되었다. 밤에도 낮처럼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밤에 일하는 직업도 적지 않다. 밤낮없이 일할 수 있게 된 지금에 우리는 그에 비례해서 늘어난 불안을 떠안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그만큼 더 휴식과 위안이 필요하게도 되었다. 그러나 밝은 밤에 우리는 진정한 휴식과 위안을 잃어버리고 밤을 밝히는 불빛만큼이나 자극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제 진정한 휴식과 위안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휴식과 위안을 필요로 하는 도시인에게 일청을 권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 바리톤 색소폰을 주로 연주했던 재즈 색소포니스트 게리 멀리건이 피아노를 연주한 'Night Lights'가 그 곡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나른한 시간에 지친 몸과 마음에 위안을 줄 만한 여유와 함께 쓸쓸함이 느껴진다.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고독한 이면을 잘 표현한 곡이기도 하다. 허드슨 강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야경을 디자인한 LP 재킷도 마음에 든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잠을 청하기 전에 듣기에 제격인 음악이다.











https://youtu.be/Wf02V8AtMag?si=9A_Fi4gAGje93u_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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