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발 로웰은 미국의 부유한 집안 출신인데 공부도 잘했다.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로웰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가업인 섬유회사를 물려받아 일을 하던 중 1882년에 일본에 관해 알게 된 후 곧장 일본으로 간다. 그는 마침 조미 통상조약을 준비하던 조선의 사절을 미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아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등을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부터 워싱턴까지 인솔하고 당시 대통령과의 면담도 주선해 주었다. 그 공로로 1884년 고종의 초대로 조선을 방문하여 1885년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이라는 책을 썼다.
10년간의 아시아 생활을 마친 로웰을 사로잡은 것은 화성이었다. 밀라노 천문대의 스키아파렐리가 화성에는 카날리가 있다고 쓴 책에 꽂힌 것이다. 이태리어로 카날리(canali)는 홈, 물길을 뜻하는데 로웰은 이를 운하로 이해했다. 한 번 꽂히면 당장 실행하는 성격인 그는 사재를 털어 당시 세계 최고 성능의 망원경을 설치하고 직접 화성을 관측하였다. 그리고 줄기차게 화성 운하에 대하여 발표하였다. 나중에 윌슨산 천문대가 설치되어 화성에 운하가 없다는 발표를 하였지만 이미 대중에게는 화성에 운하가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고 조지 오웰을 비롯한 SF작가들은 화성 문명에 대하여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망원경의 성능이 개선되고 관측이 계속되었지만 화성 운하는 발견할 수 없었다. 나도 화성에 운하는 아니더라도 운하처럼 착각할 수 있는 지형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왔었다. 1960년대 매리너 우주선이 4차례 화성을 관측하여 화성에 운하가 없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대중의 믿음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드디어 2002년에 로웰이 화성에 운하가 있다고 믿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로웰은 평소에 혈압이 높은 편이었는데 안구의 핏줄이 화성 표면의 운하처럼 비쳐 보인 것이었다. 로웰은 금성 표면에도 줄무늬가 있다고 발표한 바 있었는데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풍운아 같은 로웰은 자신의 수학 실력을 발휘하여 해왕성 바깥에 또 하나의 행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플래닛 엑스라고 불렀다. 로웰 사후에 그 행성은 명왕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2006년 이후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결국 로웰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 사이에 믿음이 퍼지는 양상이 재미있다. 첨단 과학을 이용한 그럴듯한 발견과 해석이 곁들여지면서 지지자들이 지속적으로 같은 주장을 반복하면 사실과 다른 증거가 어지간히 쌓이더라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팀 버튼의 <우주전쟁> 같은 영화는 요즘도 관람객을 꽤 많이 모으지 않는가?
<블랙홀 옆에서> 닐 더글러스 타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