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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Feb 16. 2024

32화: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6년 전 이야기.

 

시아버지는 옆 동네 위치한 오피스텔을 한 달 단기 임대하여 나 때문에 몸이 아프다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분가는 아무래도 목돈이 필요한데 당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일단 단기라도 떨어져서 지내보고 우리 부부의 이혼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시어머니가 없는 집은 평화롭다 못해 꾸벅꾸벅 졸리기까지 했다. 일단 베이비시터 이모님도 할머니 잔소리가 없다고 웃고 다녔고 나도 퇴근 후 집에 오면 들리던 신음소리가 사라지니 나른함을 유지하다 쉽게 잠이 들어 숙면을 취하니 피로도가 덜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네? 네! 네.”

전화를 받은 남편은  ‘네’만 외치다 끊었다.

“엄마가 지금 응급실에 있대!”

“왜?”

“몰라! 아버지랑 또 싸웠나 봐…”

 

남편은 이런 일은 이제 익숙하기에 천천히 옷을 입고 나에게 말했다.

“별 일 아닐 거야. 곧 퇴원할 거니 집까지만 모셔다 드리고 올게.”

 

담담한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킨 후 휴대폰을 챙겨 나갔다.

 

자정이 막 넘은 시각.



두 분은 또 무슨 일로 싸워 시모가 엠블란스를 타고 응급실에 실려가셨나…

 

남편이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지나 전화가 왔다.



“곧 퇴원이야. 나도 출발할 테니 먼저 자…”

 

우리 식구들은  엠블란스, 경찰차 등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퇴근 후 우리 집 아파트 앞에 도착했는데 엠블란스나 119 차량이 대기 중이면 난 생각한다.



‘또 시작이네…’



그러면 백발백중 시아버지랑 싸우다 시어머니가 실신해 실려 나온다. 분명히 아버지가 참다못해 욕을 한 것이리라… 우리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욕을 하면 금방 울고 심하면 실신하신다.

 



남편이 돌아와 무심한 듯 나에게 말을 건네었다.

 

“오늘은 혈압이 많이 올라갔대. 쉬면 나아질 거래…아…그리고 아버지가 내일 만나자고 했어. 그 커피집에서… 알지? 그 공원 앞에 새로 생긴 집.”

“응…”

 

 

 다음 , 약속한 그 커피집으로 갔다.



시아버지 표정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어제 한 잠도 못 주무신 듯 눈이 퀭하게 보였다.

“잠 못 주무셨어요?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어머니는 어때요?”

“… 음… 맨날 그렇지…”

 

시아버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사실 외모로만 보면 연약하 그지없는 70대 노인이다… 난 아직도 시아버지를 모르겠다.

 

“… 미야… 나와 네 시어머니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 거면… 이혼하지 말아라. 네 엄마는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서 너희들 일에 절대 간섭하지 않도록 할게. 내가 바뀌면 될 것 같아…”

 

시아버지는 다시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갑자기 문득 궁금해졌다. 시아버지의 마음에 대해서…

 

“여보 … 나 아버지랑 따로 이야기 좀 했으면 하는데 잠깐만 아버지랑 밖에 나갔다 올게. 아버지, 잠깐 나가요…”




 

남들에겐 산책 코스이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인 근처 공원에서 우리는 미친 사람들처럼 싸운 기억 밖에 없었다. 나의 설렘,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싸우고 싸우다 다 타버렸다. 은 건 그 수많은 것들을 태우고 남은 잿더미…



미야 … 어서 말해라…”

“아버지… 좀 죄송하지만, 제 생각을 이야기해 볼게요.. 아버지는 어머니를 이성으로, 그러니까 여자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요… 어머니를 사랑하세요?”

“뭬야?  너… 너…”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 결국 저만 죽어 나가잖아요.”

“너… 너…


시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내가 사랑한 남자의 부모님이니 그들도 내 남자처럼 나를 아끼고 사랑해 줄 거라 생각한 건 완벽한 나의 망상에 가까운 착각이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생활 방식도 바뀌었지만, 적어도 유교적인 가부장적인 관습이 남아있는 가정 내에서는 근거도 없이 며느리에게 한 없는 헌신과 희생을 요구했다.

 

시아버지가 조강치처로서의 어머니, 자녀를 훈육하고 길러내는 양육자로서의 어머니는 높이 평가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그 두 사람 사이 부부로서의 관계는 메말라갔고, 그런 시어머니에게 다소 미안한 감정이 있던 시아버지는 신선한 고부 관계를 선사함으로써  ‘서로 잘 지내보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어머니에게 기분의 전환을 주고 당신은 이 관계에서 쏙 빠져 평생 반려자에게 덜 미안해하며 오로지 외부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마음을 끝까지 모른 척한 시아버지야 말로 시어머니에 버금갈 만큼 나에게 상처를 준 어른이었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피해는 직접적으로 직계 자녀는 물론,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국 며느리인 나에게까지 다다랐다.



"'라떼'에는 대부분 남자들이 다 그랬다."


"시대가 변했어요.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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