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며느리인 내가 이 집안의 피스 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자질이 있는 사람일까?
남미의 어느 곳에서.
유치원 수업이 끝나고 귀여운 7세 ‘여자 아이’는 4세 남동생의 손을 꼭 잡고 집에 도착했다. 이상했다.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아빠는 회사에 가서 오려면 멀었는데…
여자 아이는 엄마를 부르면서 거실 쪽으로 뛰어갔고 동생은 뒤따라 왔다. 가정부는 밖에서 잠시 머물렀다.
갑자기!
갑자기 차디찬 그 무엇이 여자 아이의 양쪽 관자놀이를 눌렀다. 옆을 보니 동생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에 복면을 쓴 거구의 남자들이 여자 아이의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악마를 찾으려고 멀리 갈 필요 없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들도 악마다.
여자 아이를 짓누르던 그 차디찬 무거운 물건 보다 더 놀라웠던 건 엄마의 싸움, 그러니까 우리 집 거실에서 가녀린 동양 여자인 엄마와 3명의 남자가 눈앞에서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오랫동안 목격한 것이었다. 마치 영화속 전사처럼 싸우는 (물론 대체로 맞았겠지만) 엄마의 모습을 난 오랫동안 기억의 서랍 속에 가두어 놓았다.
여자아이는 엄마를 도와 그들과 싸우고 싶었지만 남자 두 명이 나와 동생을 묶어 놓고 있었기에 엄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늘의 도움인지 엄마는 그들과 오랫동안 피를 흘리며 싸웠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유치원에서 우리를 데려온 가정부가 경찰에 신고를 한 걸까…
엄마가 강도들과 대적하면서 한 말 중, 내가 들은 유일한 포르투갈어를 한국어로 바꾸면
“아이에게 손 대면 너희를 다 죽여 버릴 거야!! 너희들이 원하는 돈이나 다 가져가!”
로 될 것이다.
젊은 엄마는 강도들에게 애원을 했다가, 저주를 퍼부었다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기도 했다.
이 7세 여자 아이는 ‘과거의 나’이다.
마치 쟌다르크처럼 남자들과 맞붙어 싸우면서 내뱉었던 엄마의 그 외침대로 지금까지 내 의지에 반하여 내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무려 7세 때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