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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Feb 13. 2024

31화: 시어머니의 과거



혼 후 처음 보는 남편의 '눈'이었다. 그 반짝이는 것들은 흘러내릴 듯 말 듯 일렁거리며 한참을 그의 눈가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조소와 경멸 그리고 분노가 어우러져 나의 얼굴 전체로 쏟아져 내려왔다. 아, 이런 남편의 눈은 너무 어렵다... 곧이어 그의 혀는 숨 쉴 틈도 없이 나를 짓이겨 놓았다.


"뭘 듣고 싶은 거야? 무슨 말을 듣고 싶어? 우리 엄마가 정신 병자란 말을 듣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 정신 이상한 엄마가 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듣고 싶은 거야? 아니 사랑할 여유도 없었겠지. 엄마도 남편에게 사랑을 못 받았으니. 눈치챘겠지만. 아버지와 엄마가 매일 싸워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엄마에게 '너를 ㅇㅇㅇ 나뭇가지 위에 걸어놓고 말겠다!'라는 저주를  퍼붓는 걸 듣고 자란 나의 입에서 무슨 얘기를 듣고 싶은 거냐고? 뭔가 확신을 얻고 싶어? 굳이 알고 싶어? 다 알려주지... 자신 있으면  따라와! 당신은 맨 정신으로 내 얘기 못 들어... 맥주 한 잔 하자."


순간 이 상황에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으로 그와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정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시어머니고 뭐고 내 손으로 직접 암매장되었던 그의 상처를 지면으로 끌고 나왔으니 이제 내가 그것들과 대면해야 하는데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난  그냥 귀여운 두 아이와 잘 살고 싶을 뿐인도대체 어디에 와 있는지... 도망은 갈 수 있는지...





집 앞에 늘 가던 호프집으로 들어갔다.



무슨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출입문 옆에 앉았다. '여차하면 도망이다.'


그곳에서 난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아버지는 가정에 소홀했고 특히 시어머니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았다. 그들의 신혼 때 아무 연락도 없이 시아버지가 두 달간 외박을 했다. 이후 충격을 받은 시어머니는 밥만 먹으면 다 토해내 자주 병원에 가야 했다. 섭식 장애와 우울증을 앓았다. 그녀는 늘 누워 있었고 남편을 기다렸지만 시아버지는 그녀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그 두 분의 관계는 최악이었지만 각각 자녀에게는 사랑을 주려고 애를 썼다. 최소한의 부모로서의 도리는 했기에 두 분에게 존경심은 남아있다.'


남편의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난 만취했다.  



 



난 술에 취 상태로 밖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그래도 내 생각엔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 연기한 거야... 다... 연... 기...야..."


"내가 사랑을 받았다는데 당신이 뭔데 그걸 부정하는 거야?"

" 아, 알았어. 미안..."


또다시 남편의 그 눈을 볼 자신이 없었다.


잠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그때, 유치원 다니는 두 아이의 부모였다.




'이제 됐어?'


'아니! 아직 부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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