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빈 곳이 고른 사람
왜 어떤 사람을 만나면 설명할 수 없이 끌릴까?
말투, 표정, 온기, 눈빛, 그 모든 것들이 나도 몰랐던 어떤 갈망을 건드릴 때,
마음은 말도 없이 달려간다.
그건 이성(합리성)이 아니라, 결핍이 반응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결핍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서 말하기 시작한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을까?
왜 나는 자꾸 저런 사람에게 끌릴까?
왜 사랑할수록 불안하고 힘들까?
위의 질문들은 모두 사랑의 언어로 위장된 결핍의 목소리일 수 있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면 안심되지만, 동시에 두려워진다.
사랑받고 싶어서 다 맞춰주지만, 점점 지쳐간다.확신을 원하면서도 막상 확신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지루하게 느껴진다.
이런 감정의 흐름 안에는 채워지지 않았던 감정의 공간이 있다.
우리는 사랑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이 나의 결핍에 맞춰 누군가를 호출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결핍을 채우려는 심리적 호출에 가깝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안전한 사람보다 위험한 사람에게 끌리고,
내게 잘 반응해주는 사람보다 회피하는 사람에게 더 매달리기도 한다.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이유는 그가 특별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를 통해 내 결핍과 갈망이 건드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아니마/아니무스, 그림자, 콤플렉스는
모두 ‘내가 나로부터 분리된 감정의 조각들’이다.
사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종종 그 감정의 조각을 타인의 모습 속에 투사하고,
그 사람을 통해 잃어버린 자기 일부를 되찾고자 한다.
이건 집착이나 맹목이 아니라, ‘잃어버린 나’를 다시 통합하려는 무의식의 움직임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향해 마음이 움직일 때,
그건 그 사람이 채워주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 있던 감정의 결핍과 갈망이 움직이는 순간이다.
어릴 적 받지 못했던 위로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감정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나의 존재
이 결핍들은 상대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사랑은 지금 이 사람을 향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과거의 나를 향한 복원 시도이기도 하다.
사랑은 결핍의 언어다.
그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내 안의 어떤 조각이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나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