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험한 미국사 (김봉중 지음)

-트럼프를 탄생시킨 미국 역사 이야기

by 이병철
위험한 미국사.jpg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미국, 진짜 그 미국이 맞나,

미국은 대체 어디로 굴러가고 세계는 또 어떻게 뒤집힐 건가"


이 책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평생 미국사(美國史)를 연구해온 저자로서 지금의 미국을 논하지 않을 수 없고 앞으로의 예측이라는 피할 수 없는 고민을 담은 내용이다.

트럼프의 시대를 미국 역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의 걱정이자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어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후 미국의 정치, 외교사에 있어 굵직한 맥락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먼로 독트린과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1823년 먼로는 미국의 고립주의 원칙을 천명한 역사적인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미국이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내정 간섭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 역시 유럽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1840년대 소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e)이라는 팽창주의적 흐름이 미국을 지배한다. 1845년 미국의 텍사스와 오리건 점유를 마치 신의 계시인양 포장하면서 미국 대륙의 확장을 합리화하고자 한다.

그리고 먼로 독트린과 명백한 운명이라는 대립적 가치를 가지는 선언은 마치 전가의 보도인 양, 미국의 세력이 미약할 때는 먼로 독트린으로 외부 세력을 차단하고 그들의 힘이 우세할 때에는 명백한 운명을 들먹이며 끊임없이 팽창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1861년 남북전쟁 발발 이후 미국은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게 되고,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쿠바,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괌은 미국의 손에 떨어졌고, 이로써 고립주의는 희미해지고 제국주의라는 낯선 깃발아래 명백한 운명이라는 팽창주의적 흐름이 먼로의 고립주의를 대체하게 된다.

1901년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의 팽창주의는 더욱 극렬히 작동하게 된다. 그는 먼로 독트린에 갇혀 미국의 이익을 쟁취하지 못하는 것은 신이 부여한 ‘명백한 운명’을 져버리는 행위라고 믿었다. 영국과 콜롬비아의 방해를 뚫고 파나마 운하를 밀어 붙여 1914년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뱃길을 열었다. 동아시아에도 눈을 돌려 1905년 러일 전쟁 당사자들을 중재하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타협하며 견제하고자 해군력 강화에 전력을 쏟았다.

그리고 제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2. 미국의 정치 지형 변화

미국이란 나라 역시 지역주의에서 예외가 아닌데 정치적 지형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1861년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고집한 남부지역은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이는 공화당의 애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시도함에 따른 것이기도 하고 연방주의보다 주정부의 자치권 확대를 지향하는 민주당과 함께 했다. 그리고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추진한 뉴딜 정책은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공화당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지만 민주당은 노동자, 흑인, 남부지역의 지지를 받게 되고 남부는 민주당의 열렬한 텃밭이 된다.


그러나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남부 백인 집단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다. 민권법은 남북전쟁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던 공공시설에서의 인종분리 금지, 고용 차별 금지, 교육에서 인종 차별 폐지, 투표권을 확대하여 흑인에 대한 참정권 부여 등이 골자로서 미국 민주주의의 진전과 사회정의 실현의 이정표가 된다.

반면에 공화당은 인종 문제를 정치화하여 소위 남부전략(Southern Strategy)을 통하여 백인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함으로써 남부지역의 지지를 끌어내게 된다. 남부전략이란 직접적인 인종차별 언급은 피하면서도, 범죄, 질서, 지역 교육권 등의 이슈를 통해 흑인 민권 확대에 대한 백인 유권자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으로써 지지를 끌어내는 것을 뜻한다.

인종 문제외에도 정치 이념, 복지 정책 등에 관한 이념 차이로 미국 역시 정치적 지역구도가 고착화되어 가는데 남부지역은 백인, 앵글로 색슨, 기독교라는 보수적 성격의 공화당 지지 기반으로 변모하게 되고 신개척 지역인 서부지역이 진보적 사고의 민주당 텃밭으로 자리잡는다.



3. 문화 전쟁

미국은 현대에 들어 레이건, 클린턴, 부시, 오바마 등 여러 시기를 거치면서 문화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인종 문제는 물론 이민 문제, 동성애 문제 등은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되었고 이는 사회 분열의 주요한 요인들이 되고 있다.

특히 오바마가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보수 백인들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진보적 사상에 대하여 극단적 반대를 표하게 된다.

인종 문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최근들어 이민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정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트럼프는 불법이민자에게 현재 미국이 처한 모든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는 선동적 언어와 연설로써 대중의 불만을 이용하는 정치적 이득을 취하고 있으며, 그가 인용하는 데이터와 억지 주장이 그릇된 숫자이든 비논리적이든 개의치 않고 오로지 감성적 선동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먼저 온 이민자가 뒤늦게 온 이민자에게 텃세를 부리는 모양새이다(그것도 역사라곤 고작 300년도 안 되는 나라에서). 이런 갈등은 사회를 분열시켜 "우리와 그들" 이라는 인식으로 확산된다.


동성애 합법화 움직임 또한 보수적인 기독교인들로부터 터부시되어 종교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외에 총기 규제에 대한 입장도 첨예하게 대립하는데, 빈번한 총기 사고에 따라 보다 강력한 규제를 원하는 목소리와 이에 반하여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소위 '미국답다'고 하는 보수적 입장이 서로 맞서고 있다. 그리고 막대한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로비로 인해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내세울 때 이들은 가장 강력한 정신적 자산이 되어주었다.


흔히들 미국 사회를 멜팅 팟(Melting Pot) 혹은 샐러드 보울(Salad Bowl)에 비유한다. 멜팅 팟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합되어 새로운 미국 문화를 창조한다는 개념이고 샐러드 보울은 다문화 사회에서 각 문화가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멜팅 팟 이론은 백인 앵글로 색슨 기독교(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s)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야 한다는 관점이고 이에 반하여 서로 다른 문화들이 존중받으며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샐러드 보울 이론이다. 트럼프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미국 땅에 먼저 온 것으로 주인 행세를 하고자 한다면 토착 원주민들을 어떻게 했던가를 돌아봐야 한다.

결국 미국이 미국다워지기 위해서는 큰 역사의 흐름에서 바라보는 성찰이 있어야만 한다는 원론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4. 트럼프式 포퓰리즘

도널드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반엘리트 주의’, ‘자국 우선주의’,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중심으로 대중의 불만과 정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미국 정치의 기존 질서와 엘리트 계층에 대한 반감을 바탕으로, 보수적 가치와 경제적 불안을 결합해 강력한 지지층을 형성했다.

- 엘리트 반대와 SNS를 통한 대중 직접 정치

기존 정치 제도(의회, 관료, 사법부)를 불신하며, 자신은 대중으로부터 직접 지지를 받는 지

도자라고 주장한다.

- 자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보호무역, 반이민 정책, 국제기구 탈퇴 등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트럼프는 우리나라와의 FTA는 물론 멕시코 캐나다와 체결한 USMCA역시 재조정하며 동맹

국의 지위를 격하시키고 미국의 실질적 이익보다 선전용 결과에 치중하는 듯하다.

- 선동적 언어와 강한 리더십 이미지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로 지지층을 결집을하고 ‘강한 미국’, ‘위대한 재건’을 강조하지만,

사실관계에 어긋난 것도 많고 감성적 어필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 경제적 불만층 공략

저학력 백인 노동자, 중산층 몰락 계층 등 기존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한다.


그러나 그의 정치노선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의회와 사법부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는 등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위협으로 지적된다.

또한 사회 분열을 심화시켜 인종, 이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미국 사회의 분열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의 포퓰리즘은 단순한 정치 스타일을 넘어, 현대 민주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대중의 불만을 반영하는 세계적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유럽, 일본, 중남미의 극우 세력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또한 트럼프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고 특히 관세와 대미 투자 강요는 현대판 조공을 연상케 한다.

얼마 전 막을 내린 경주APEC 기간 동안 양국은 합의를 이뤄냈고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할 것이다.

자국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 이를 통한 보호 무역주의와 무지막지한 反이민 정책은 마치 광란의 질주를 보는 듯하다(이는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이럴수록 우린 영민한 대응으로 불똥이 우리에게 튀지 않도록 여우처럼 처신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구호가 등장할 것이지만 의회의 구성상 탄핵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는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상대를 잘 분석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한다.




*P/S

이번 미국과 일본의 관세 협상을 보면서 불현듯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떠오른 것이 과연 나만의 느낌일까?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5,500억불의 현금투자를 끌어냈다고 발표했고, 이에 한국에는 3,500억불의 투자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리 했으니 한국은 당연히 그 모델을 따라할 것이라는 예상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위정자라도 일본의 사례는 좋은 구실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미국과 일본이 서로 내용을 부풀려 발표한 것으로 드러났다.

마치 제 2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처럼 진행된 것이다.


가쓰라-테프트는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것으로서 미국은 필리핀을 점유하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는 내용이었고 이에 따라 을사늑약이 순조롭게 진행된바 있다. 당시 시오도어 루즈벨트는 러일전쟁을 중재한 덕(포츠머스 회담)에 1906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게 된다.


세계열강들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약소국에 대한 지배욕이 매 한가지이다. 친일과 친미 성향의 정치인들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국과 관세협정을 왜 체결하지 않느냐고 성화였다.

을사늑약 후 지난 120년간 우리나라 역사에 어마어마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의 우리는 국력이 놀라우리만치 신장되었고 우리만의 정보망과 인맥을 구축하여 대미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란 나라 아니 트럼프 정부는 '한 손엔 성경 다른 손엔 달러'를 들고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정책을 고집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명확히 보이지 않는가?



-------- 끝 ---------

e8b4c6bf-ec04-4bcd-9e6c-2a752c9c7928.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망楚亡 (리카이 위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