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많은데 시간 아깝기도 하고. 나도 용건 없이 전화하는 거 좋아하지 않거든요. 근데 별 거 있나요.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으니 목소리라도 듣고자 하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는 거니까. 크디큰 마음이 더해지면 아주 중요한 용건이 될 수도 있는 거죠. 나는 먼저 할 수 없으니 당신이라도 자주 걸어줬으면 좋겠거든요. 술은 속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 조금 먹되 통화 버튼을 누를 정도로는 취했으면 해요. 술을 마시지 않고도 나를 떠올리다 취기가 올랐으면 해요.
난 당신이 애써 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꼬인 혀나 손가락 같은 것도 그래. 감각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서운함을 말하려다가도 슬픈 노래를 부르다가도 금세 헤헤 웃어버리잖아요. 맑은 웃음소리는 아주 듣기 좋아요. 하지만 감추던 슬픔을 살짝 티 내면 분위기가 처질까 봐 걱정하는 거죠? 습관처럼 웃으려 하지 않아도 되어요. 늘 말하잖아, 어른이지 않아도 성숙한 면만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내 앞이 아닌 다른 곳에서 무너진다면, 혹여 그게 모두 잠든 새벽이거나 아무도 없는 곳은 아닐까 생각해요. 숨을 크게 몰아내 쉬고 어질어질한 머리를 붙잡고 이불속에 겨우 숨는 게 전부일까 걱정돼. 당신의 고독을 멋대로 상상해 보다가 마음이 아파져서 멈춰요. 혼자라고 느낄 때 정말 혼자인 건 더 슬프다는 걸 알기에 ‘이런 식’으로 무너질 때만큼은 받쳐주고 싶은 욕심이 나고는 하네요. 담배가 당기는 이유에 대해 공감하는 날 같은 거 다시는 오지 않길 바라지만 그런 날에는 내면을 들려주겠다고 약지를 걸어줘요.
알다시피 오늘은 밀린 잠을 전부 잔 바람에 결국 새벽 4시 반까지 깨어 있습니다. 그 덕에 이렇게 디지털 편지를 적어 건네요. 실은 손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음, 내가 힘들 때 펼쳐 볼 수 있는 편지 같은 존재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맹세. 맹세란 무엇입니까? 지키지 못할 말은 인사치레로도 하지 않아서요. 이런 거 많이 낯설긴 해요. 오랜 진심을 약속할게요.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쏟고 글을 쓰는 거 5분도 길다고 했는데 단순히 누군가는 아닌가 봅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이런 글을 써대는 걸 보면 말이죠. 당신은 내게 무엇을 맹세해요?
지난 주말에는 경량 패딩을 입었는데 더워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어요.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반팔을 입은 사람도 있더군요. 오지 않을 거 같던 봄은 물씬 다가왔습니다. 푸릇한 새잎들이 거리를 채우기 시작하겠지요? 계절에도 마음에도 소복한 꽃이 펴요. 언제나 과분하다는 마음을 지니고 이러저러한 것들을 헤쳐나가기로 해요. 나 혼자 기억할게. 너 혼자 나 혼자만 기억하는 서로의 모습들의 꼬리를 기일게 나열해 가며 오래 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