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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Sep 24. 2024

녹아내린 잔상



 눈사람이 녹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하지만 그게 꼭 슬픈 건 아니었어. 흩어지는 게 꼭 사라짐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눈사람이 녹아내리며 남기는 흔적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을 거라고 믿고 싶어.


 그러고 보면, 나도 마찬가지지. 당신과 했던 대화를 가끔 복기해 보면, 그 순간들이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많은 말을 주고받았지만, 그 말들이 사라진 건 아니야. 그냥 잠시 다른 형태로 우리 곁에 머무르는 것뿐이지.


 당신이 내게 했던 말들, 그 말들이 남긴 자국을 떠올려. 따스했던 온기,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피어났던 작은 불빛 같은 대화들. 그 말들은 내 마음에 스며들어 아직도 잔잔한 울림을 남기고 있어. 흐드러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 말하자면 그런 거야.


 눈사람이 녹아내리면서 어딘가로 스며들듯이, 우리도 흩어지더라도 그 흔적은 남아 있어. 결국 완전한 사라짐이란 없고, 그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우리 곁을 맴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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