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어릴 때의 나는 케이크 조각을 남기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 달고 맛있는 이걸 왜 다 먹지 않는 거지, 어떻게 남길 생각을 하는 거지. 그렇다고 해서 그걸 나중에라도 다 먹는 게 아니고, 상자 채로 냉장고의 한구석을 꽤 오래 차지하고 있다가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고 말잖아. 케이크 상자 안쪽에는 크림의 기름기가 묻어 얼룩진 자국이 투명하고 진하게 남은 채로 접히고 접혀 버려지고 마는 거지.
그런데 나도 네가 건넨 치즈 케이크를 먹다가 절반은 남겼어. 포크를 두 개 받았는데 하나는 서랍에 조심히 넣어뒀어. 냉장고에 있던 써머스비 한 캔을 꺼내서 불도 끄고 한 뼘짜리 조명만 켠 상태로 바닥에 앉아. 괜히 분위기 잡다가 맥주를 바닥에 흘리고 말았어. 엉성해. 그래도 차라리 엉성한 게 나은 것 같아. 익숙해지면 적잖이 슬플 것 같은 일들이 가끔 있잖아. 혼자 마시면 빨리 마셔서 금방 취하는 거라며. 그래서 세 모금에도 벌써 몸에 열이 오르나, 윗옷을 벗어던졌어. 볼 테면 보라지-.
오랜만에 홍콩 영화 볼까 했어. 불 꺼진 방과 옅은 조명, 창문 밖 도시의 노을이 지금도 선명해서. 너는 어때. 방금 막 모기에 물렸어. 어쩐지 발목이 간지럽더라고. 물리고 나서야 알아. 케이크의 단 맛도, 누군가 식사를 마친 이후의 내 다리도. 요즘은 한 손으로도 잘 잡아. 불을 껐다 켰다 반복했는데 냉장고에 딱 붙어 있는 걸 봤어. 방금 내 몸을 빠져나간 나의 피가 휴지를 적셨어. 나는 대충 싸서 비닐에 버리고 다시 불을 끄고 자리에 앉아. 맥주를 조금씩 곁들이며, 아무도 없는데 노이즈 캔슬링을 켜놓고. 약간의 소음도 허용하지 않을 듯이.
케이크 반 조각 남겨두면 같이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 말이야, 줄곧. 제법. 오래. 실은, 너무 떠나고 싶었는데. 어디냐고, 당연히 케이크 왕국이지. 너랑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어. 그래서 혼자 케이크를 먹고 온 네가 미웠어. 왜 하필 치즈 케이크를 먹었어. 왜 골라도 꼭 티라미수 케이크를 먹었어. 둘 다 내가 좋아하는 거 다 알면서 짜증 난다. 내가 표정을 잘 숨기거나 아예 솔직했어야 하는데 나는 둘 다 잼병이잖아. 그래서 괜히 너한테 못되게 굴기나 해. 열 살짜리 남자아이의 사랑처럼 좋아하면 자꾸 괴롭히기만 해.
남기는 마음은 기대 아닐까. 혼자 다 해치워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남길까. 조금이나마 기대를 남긴 사람이 남기는 거 아니겠어. 케이크 오늘만 먹고 더 못 먹을 사람이면 다 먹고 말 텐데. 맥주 마시니까 몸이 간지러워. 이래서 맥주 싫어해. 목이 간지러워. 손바닥으로 대충 쓸어내리고 네가 누웠던 바닥에 나도 누워보는 거야. 등이 차갑고 딱딱해. 넌 이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네가 되었어. 제조일자는 왜 있는 걸까. 병신 되기 참 쉬워.